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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20년 양키스, 베이브 루스 영입

입력 | 2009-01-05 02:57:00


조지 허먼 루스 주니어는 문제아였다. 다섯 살 때부터 입담배를 질겅거렸다. 가톨릭 수도사가 운영하는 세인트 메어리 공업학교에서 야구를 배웠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그를 1914년 영입했다. 전지훈련과 시범경기에서 가공할 피칭 솜씨와 장타력을 선보이자 기자들이 ‘어린아이’라는 뜻의 애칭을 만들어 베이브 루스로 불렀다.

데뷔 초기에는 투수로 맹활약했다. 1915년 18승, 1916년 23승, 1917년 24승을 올렸다. 개막전에서만 3년 연속 승리하며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가 됐다.

홈런타자의 자질은 1918년부터 두드러졌다. 트레이드로 외야수 자리가 비면서 95경기에 나서 홈런 11개로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에 오른다. 타율은 4할 8푼 4리. 투수로서도 18승을 따냈다.

루스가 6개 시즌을 뛰는 동안 보스턴 레드삭스는 월드시리즈에서 3차례 우승했다. 1916년과 1918년의 월드시리즈에서 그가 세운 29와 3분의 2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은 43년간 깨지지 않았다.

홈런 29개로 두 번째 홈런왕을 차지한 1919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성적은 나빴다. 66승 71패로 아메리칸 리그 6위에 그쳤다.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는 돈이 필요해서 루스를 팔기로 결정한다. 금액은 12만5000달러. 계약서는 12월 26일 작성됐고 뉴욕 양키스는 1920년 1월 5일 공식 발표한다.

루스의 진가는 이적 이후에 더 빛났다. 1920년 54개, 1921년 59개의 홈런. 팀이 승승장구하며 입장 수입이 늘자 구단은 뉴욕 자이언츠와 함께 쓰던 폴로 그라운드를 떠나 양키 스타디움을 새로 지었다.

그는 1923년 4월 18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개장 1호 홈런을 때렸다. 상대팀은 친정인 보스턴 레드삭스.

위대한 어린 사슴(The Great Bambino), 파괴의 제왕(The King of Crash), 스윙의 황제(The Sultan of Swat)라는 별명이 붙었다.

뉴욕 양키스는 그를 영입한 뒤 아메리칸 리그에서 39회, 월드 시리즈에서 26회 우승했다. 반면 레드삭스는 86년간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해 ‘밤비노의 저주’라는 말이 나왔다.

루스는 통산 홈런 714개(홈런왕 12회), 타점 2211개, 타율 3할4푼2리를 기록했다. 투수로서 성적은 163경기에서 탈삼진 488개, 94승 46패, 평균자책 2.28, 월드시리즈 최장이닝(14) 완투승.

AP 통신은 1999년에 금세기 스포츠 스타 100명을 선정하면서 그를 최고의 선수로 꼽았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