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대통령’이 장엄한 비극배우이길 바랐다. 하지만 퇴임을 앞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다시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
최근 NBC와 월스트리트저널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79%가 퇴임 후 부시 대통령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아직 현직 대통령임에도 그는 이미 잊혀 가고 있다. 중동에서 월스트리트, 그리고 메인스트리트까지 그의 실패는 넓고도 짙다.
부시 백악관의 재능 가운데 하나는 선전할 것을 만들어 내 대중과 언론에 파는 능력이다. 속임수로 가득 찼던 그 가방은 이제 텅 비어 버렸지만 말이다.
이라크에서 폭동이 소용돌이치던 2003년 11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장을 방문한 것은 선전의 결정판이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칠면조를 군인들에게 날라주는 ‘총사령관’의 사진은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했다.
5년 뒤인 2008년 12월. 이라크를 고별 방문했던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기자가 던진 신발에 맞을 뻔했다. 그는 이 소동을 두고도 “자유 사회에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민주주의 증진 프로그램’의 승리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라크가 불타고 뉴올리언스가 물에 잠기고 매번 실수가 계속되는데도 부시 대통령은 눈을 감았다. 철 지난 물건을 파는 상인처럼 마지막 날까지 그의 상품을 선전하고 있다. 퇴임을 앞두고 전임자들보다 훨씬 많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칼 로브 전 백악관 부실장, 캐런 휴스 전 국무부 홍보담당 차관 등 오랜 측근들은 ‘부시 유산 알리기’에 나섰다.
로브 전 부실장은 부시 대통령과 누가 더 많이 책을 읽는지 경쟁을 벌였다고 최근 언론에 털어놨다. 알베르 카뮈와 같은 고급 저자의 책을 포함해 한 해 95권의 책을 독파할 정도로 부시 대통령은 다독가라고 증언했다.
위인전에 나올 것 같은 이런 말보다는 리처드 클라크 전 백악관 테러담당관이 한 잡지에서 털어놓은 증언이 더 와 닿는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늘 메모를 짧게 쓰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은 읽기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치적과 성과’라는 소책자도 부시 대통령의 실적을 과장 선전하고 있다. 다음 괄호 안의 내용은 대통령의 실적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을 안전하게 지켰다’(임기가 2001년 9월 12일에 시작됐나 보다), ‘미국인들에게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안겨줬다’(임기가 2007년 12월에 끝났나 보다),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을 물리쳤다’(1인자 오사마 빈라덴과 2인자 아이만 알자와히리를 뺀다면), ‘아프가니스탄에 번영하는 시장경제를 가져다줬다’(아편 무역이 활황이긴 하다), ‘식량지원과 재해구호로 세계를 이끌었다’(최악의 재난대처를 보여준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잊었나).
‘그들만의 역사’를 강조하는 뻔뻔함은 자기를 모르는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론에는 “내가 집권하기 전부터 있었던 일”로 치부한다. 지난해 대선은 부시 행정부가 아닌 “공화당에 대한 거부였다”고 항변한다. 2001년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에 대해서도 “정보의 실패일 뿐”이라고 말한다.
국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도 물러서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행동이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그는 대통령 직을 수행하면서 배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이 항상 옳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것은 다시 한 번 비난을 남에게 떠넘기는 짓이다. 부시 대통령의 실패는 신이 아닌 자기 자신 때문이다.
프랭크 리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