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9호
지난해 12월13일 고려대에서는 ‘심사자 없는 논문심사’가 있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논문의 주인공은 고(故) 신천삼 씨. 그는 지난해 11월 7일 골수이형성증후군과 간암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논문 심사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진 그가 어떻게 석사학위를 받았을까.
신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국계 회사와 삼성전자를 다녔고, 무역회사와 패스트푸드점, 통신네트워크회사 등을 운영했다. 부인 김씨의 말을 빌리면 ‘앞만 보고 달린 인생’이었다.
40여 년을 일에 묻혀 산 그는 2002년 서울사이버대 국제무역물류학과에 입학해 만학도가 됐다. 내친 김에 2006년에는 고려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잇지 못한 아쉬움도 커다란 동기가 됐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왔다. 2008년 4월 논문 심사 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종합시험에 낙방한 것. 논문 심사도 한 학기 연기해야 했다. 코피가 계속 흘러 제대로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0월21일 종합시험에 합격했고 10월25일에는 논문 세미나도 거쳤으나 병마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평소 자신의 사무실에서 조용히 논문 작업을 하던 그였기에 직원들도, 가족들도 논문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생전에 신씨와 함께 논문 자료를 찾았던 동기생 이병한씨는 그의 논문에 대한 열정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학교 측에 고인의 사정을 알렸고, 유가족에게는 신씨의 논문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다행히 신씨의 컴퓨터 속에는 본론 일부와 결론이 미완성인 논문이 있었다. 이 씨는 고인의 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 자료를 찾는 등 논문 준비를 도왔다. 유가족들은 고인의 책상 서랍에서 깨알 같은 글씨의 논문 나머지 부분을 찾아내 신씨의 아들이 워드작업으로 논문을 마무리했다. 부인은 남편을 대신해 논문 심사를 받았다.
담당교수는 신 씨의 논문을 “열심히 노력한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유가족은 12월26일 신씨의 49제 때 111p의 분량의 논문을 바치며 그의 소원을 풀었다.
*자세한 기사는 주간동아 669호(1월13일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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