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재정지출보다 서민가계에 도움 될 최고의 경기부양책이 있다. 정부가 아무리 은행에 돈을 퍼부어도 대출받기 힘들지만 이건 지갑에 직접 돈을 넣어 주는 일이다. 감세해줘 봤자 연 4000만 원 봉급쟁이가 세금 50만 원 정도 덜 내게 되는데 이 특단의 정책으론 800만 원을 챙길 수 있다. 바로 과외 금지 조치다.
집집마다 가처분소득 20% 늘어
사교육으로 먹고살던 사람들이 실업자 안 되게 하는 대책도 생각해 놨다. 이들을 공교육으로 흡수하는 거다. 방과 후 수업은 기본이고 수준별, 맞춤형 학습과 일대일 교습도 가능해진다. 정부 지출은 늘겠지만 올해 ‘한국형 뉴딜 10대(大) 프로젝트’에 투입될 돈이 45조 원이다. 더 중요한 ‘한국형 뉴딜 10대(代) 프로젝트’에 20조 원쯤 추가된들 하늘이 무너질 리 없다.
허황된 공상이라는 거 안다. 전두환 신군부정권의 과외 금지가 자녀교육권과 행복추구권에 위배돼 2000년 위헌결정이 난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상경제시국을 맞아 오늘부터 일체의 사교육이 금지된다고 상상해 보시라. 이 신나는 일 없는 세상에 갑자기 쨍하고 해 뜨는 것 같다.
엄마들이 생활비 줄이려 우유 끊고 신문 끊어도 도저히 못 끊는 게 아이들 사교육이다. 2007년 학생 1명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22만2000원, 아이가 둘이면 생활비의 20%가 과외비로 나간다. 모두가 과외를 못하게 돼 한 달 50만 원씩 ‘부수입’이 생기면 그 돈으로 동네 자영업자 살리는 소비도 할 수 있고 대출금도 서둘러 갚을 수 있다. 집집마다 횡재고 정부로선 경제 살리기 성공이다.
전두환 시절로 돌아가지 않는 한 과외 금지가 불가능하다면 대안은 하나밖에 없다.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학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해 학생과 가계부담이 줄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8년 한국 경제조사 지적대로, 공교육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거다.
공교육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키느냐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좌파 우파를 가르긴 정말 싫지만 대체로 우파가 교사의 질과 학교 간 경쟁을 강조하는 반면 좌파는 부모와 지역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까지 해결돼야 공교육이 나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과 함께 떠오른 미국진보센터(CAP)가 2007년 2월 미 상공회의소와 손잡고 내놓은 ‘교육개혁을 위한 공동선언’이 이런 혼돈을 깨끗이 정리했다. “학업성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교사의 질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방대한 연구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 개혁과제가 학교평가와 성과급제, 수업능력개발 등이다. 여기서 교사의 성과란 학생의 학업성취로 측정된다. 우리나라 전교조가 주장하듯 ‘인간화 교육’을 얼마나 잘했느냐가 아니란 얘기다. 그래야 모든 아이에게 미국의 꿈을 이룰 기회를 줄 수 있다. 리버럴 싱크탱크가 지겹고 지루한 교육개혁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며 기업인들과 최초로 머리를 맞대고 내린 결론이다.
우리도 지겹고 지루한 교육논쟁을 끝낼 때가 됐다. 시험과 경쟁이 학습동기를 꺾는다는 건 1970년대 정설이고, 지금 핀란드는 ‘좋은 학교’로 뽑힌 학교의 교사에게 이탈리아 여행까지 시켜 준다. 세계 어디서나 교원노조는 교사평가를 반기지 않지만 “일단 해보니 교육의 질이 높아졌다”는 런던 정경대 데이비드 마르스덴 교수의 연구 결과도 있다.
학교와 교사가 경제 살릴 수 있다
단, 죽어도 평가받기 싫다는 교사들을 위해선 선택의 자유를 주면 된다. 스웨덴이나 미국의 몇몇 주처럼 기본급제와 성과급제를 따로 두고 교사가 각자 택하게 하는 거다. 기본급제가 짠 반면 성과급제는 상당히 후하다. 은퇴 후 연금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 물론이다. 경제와 심리, 인간 본성을 결합시킨 행동주의 경제학의 원용이다.
국회 난투극과 함께 교사평가법안도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이지만 교사평가제와 성과급제, 그리고 이를 통한 공교육 살리기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당장의 경제를 위해서도 교사들이 ‘학원 필요 없는 학교’를 만들어 줘야 한다. 내 아이가 고교를 졸업한 덕에 이제는 나도 교사 눈치 안 보고 말할 수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