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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지오그래픽]정선 ‘메주와 첼리스트’

입력 | 2009-01-09 02:58:00


된장독 3000개 두런두런 익고… 푸른 바람 속 느릿한 첼로소리

《지난 50년. 세상은 더 나아졌을까. 한 편으로는 그렇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렇지 않다. 좀 편해졌나 싶으면 자연훼손 등 그 대가가 혹독할 만큼 지대하다. 그러니 ‘그렇지 않다’는 편이 옳을 성싶다. 건강도 같다. 세상이 발달했으니 건강도 나아져야 할 터.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의술은 발달하고 병원은 늘었어도 건강은 그렇지 않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건강하고 싶은 마음. 그것은 절대로 욕심이 아니다. 건강은 태어날 때 자연으로부터 받은 선물이고 처음부터 내 것이었으므로. 그것을 되찾겠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1월에는 건강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기획했다. 목적지는 모두 강원도로 정선의 ‘메주와 첼리스트’, 홍천의 ‘힐리언스 선(仙)마을’이다. ㈜메주와 첼리스트는 잘 나가던 명문대 출신 첼리스트 도완녀 씨가 모든 명망을 떨쳐 버리고 절을 떠나 홀로 농사지으며 경전 번역하고 시 쓰던 송광사 출신 돈연 스님(나종하 씨)과 결혼, 세 아이를 낳고 16년째 살고 있는 정선군 임계읍 가목리 산골의 된장공장이자 집. 힐리언스 선마을은 ‘치료보다는 예방’을 강조하며 ‘건강은 좋은 습관에서 온다’는 사실을 설파 중인 의사이자 저술가 이시형 박사가 촌장으로 있는 건강마을 개념의 고급 리조트다. 이 두 곳의 메시지는 하나다. 건강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서 비롯된다는 간단한 사실이다. 그 두 곳을 격주에 한 곳씩 2회에 걸쳐 찾아간다.》

정선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그리고 마음이 편하다. 자연이 있어서다. 세상천지 어디를 찾아도 이만한 풍치는 즐길 수 있으련만 굳이 정선을 주장하는 이유. 그곳 자연이 더더욱 때 묻지 않은 탓이다.

정선읍내를 벗어나 보라. 전국 방방곡곡을 빼곡하게 뒤덮은 그 흔한 비닐하우스조차도 보기 어려운 두메산골이 곳곳에 있다. 거기에 산은 또 어떻고. 모두가 잠자다 벌떡 일어선 듯 그 경사가 남다르다. 지도 보지 않고 그저 아무 길로 접어들어도 길은 모두 산골마을의 순수한 자연으로 통하니 그 길이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 뜸팡이 흰 꽃 ‘장맛’ 익는 메주골, 가목리

도완녀 씨와 돈연 스님이 세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가목리(강원 정선군 임계읍)로 이어진 도로도 그런 길 중 하나다. 이곳은 해발 650m의 백두대간 산자락. 동해시와 임계면을 잇는 백두대간 고갯길의 백봉령이 자동차로 10분 남짓한 거리다. ‘도전리’라고 쓴 팻말을 따라 접어든 마을길(포장도로)로 4km. 거기서 개천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장독 항아리 3000여 개가 펼쳐진 ‘메주와 첼리스트’ 된장공장(2층 흰 건물) 겸 판매장(너와집)이 보인다.

내가 이곳을 처음 찾은 것은 1999년. 꼬박 10년이나 됐다. 도반 스님으로부터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안타까운 축사’ 속에 결혼식(1993년)을 올리고 예서 메주 쑤고 된장 간장 담그며 산 지 6년밖에 되지 않던 메주와 첼리스트의 초창기 시절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그새 변화도 많았다. 1500개였던 된장독은 3000개로 불어 더 놓을 자리가 없어 보인다. 다섯, 넷, 세 살이던 여래(여) 문수(남) 보현(여) 삼남매도 훌쩍 10대로 성장해 중학생이 되었다. 예순을 훌쩍 넘긴 스님 얼굴에는 잔주름이 잡혔고 된장아줌마 도 씨에게서도 흰 머리칼이 보였다. 집도 공장 더부살이에서 2km쯤 떨어진 부수베리 계곡 산중에 지은 산뜻한 양옥으로 옮겼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쉰 중반이건만 예나 다름없이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도 씨의 시원시원한 말씨와 그녀의 자신감만큼이나 팽팽한 얼굴 피부가 그 하나고, 된장 팔아 돈 벌어 부처의 제자들에 의해 팔리어(인도)로 기록된 불교경전을 직접 한글로 번역하겠다는 돈연 스님의 서원이 다른 하나다.

스님은 이제 조계종의 승려가 아니다. 결혼 자체가 파계여서다. 하지만 그런 ‘자격’은 그에게 별 의미가 없다. 왜냐면 그는 승려이기 이전에 구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 “스님들이 다시 절로 돌아오라고 가끔 그래요. 그러면 제가 이렇게 답해요. ‘아니 어디서고 나온 적이 없는데 어디로 돌아가느냐’고요. 허허.”

○ 자연을 닮은 사람들

내가 가목리 된장골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건강함이다. 도 씨와 스님, 그리고 그 가족의 건강한 삶이 좋고 그런 건강을 선사한 그곳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좋다. 도 씨는 된장 예찬론자다. “된장과 간장은 콩과 소금, 물과 햇빛으로 만든 자연식품이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라 200여 가지 미생물이 만들어 줍니다. 자연이 준 선물인데, 사람 몸에 좋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메주와 첼리스트에서 내는 밥상은 온통 된장 음식이다. 된장찌개에 된장국에 된장에 박아 넣은 장아찌 등등. 돼지고기 편육도 된장 푼 물에 고기를 삶아 만들고, 샤부샤부 요리도 간장독 바닥에 쌓인 간장 앙금을 떠 넣어 만든 육수로 한다. 한여름에 찾아가면 커피 대신 냉수에 간장 한 술을 떠 넣은 ‘간장 차’를 내고 간식으로는 청국장 환을 먹는다.

그렇게 먹어서 건강한 걸까. 그 이유를 묻자 도 씨는 이렇게 답한다. “글쎄요. 된장 간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연을 먹어서 그렇게 됐다’고 하는 편이 옳지 않을까요.” 그렇다. 그 해답은 자연이다. 이런 자연 속에서, 그 자연의 선물을 듬뿍 받으며 그것을 일상으로 먹고 사니 건강할 수밖에. 하지만 모든 이가 이들처럼 자연을 벗해 살아갈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도 씨와 스님은 오늘도 메주를 쑤고 된장 청국장 간장 고추장을 담근다. 왜. 거기에 자연이 담겨 있기에. 그리고 그것이 도시인에게 필요한 자연이기에.

○ 첼로 대신 낫을 잡은 첼리스트

“너 제발 물건 싸놓고 그 앞에서 첼로 연주하는 것만큼은 좀 안 할 수 없니.” 도 씨는 이 말을 들려주며 깔깔깔 웃었다. 서울 압구정동 한 백화점 판촉행사장에서 첼로 연주하는 모습을 쇼핑 나왔다가 우연히 본 동창생(서울대 음대)이 한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해가 가요. 첼리스트가 활 대신 낫 들고 콩농사 지어 된장 쑤고 시장 통에서 된장 간장 팔면서 한오백년이나 황성옛터 같은 곡을 연주하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당당하다. “제 첼로 연주는 음악이 아니에요. 건강 메시지예요. 제가 들려주는 것은 음악이지만 제가 그 선율에 담은 것은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건강을 염원하는 제 마음이니까요.” 스님도 같았다. “첼로라는 악기와 그 아름다운 음률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들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러면 된 것이지요. 그게 진정한 음악 아닐까요.”

그녀는 스스로 ‘된장을 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된장을 싸 줄때 ‘건강’을 싸서 준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이 된장 간장을 먹고 건강하시라는 생각을 담아요. 만들 때도 물론이고요. 엄마나 할머니가 만든 된장이 왜 맛있는지 아세요? 거기에는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염원이 에너지로 변해 모든 이에게 전달될 거라고 굳게 믿는다. 된장 간장을 통해 그들이 건강해질 것이라는 것도.

나는 스크랩을 뒤지다가 10년 전 내가 쓴 기사(1999년 4월 29일자 동아일보)에서 이런 부분을 발견했다. ‘첼로와 된장은 둘이 아니었다. 햇빛과 물, 기온이 제대로 갖춰져야 맛을 내는 된장, 인생의 깊은 경륜 없이는 제 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첼로. 이 둘은 ‘익어야 제 맛을 낸다’는 공통점으로 가목리에서 하나가 됐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메주와 첼리스트의 빛나는 장맛처럼.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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