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장기간 거주하다 귀국한 청소년들에게 국어를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이 있다. 필수적인 상용(常用)한자를 먼저 익히게 하는 것이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에서 왔기 때문에 한자를 알면 국어 공부가 한결 쉬워진다. 지도를 손에 넣으면 길 찾기가 수월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유럽권 언어의 어원(語源)은 라틴어에서 온 것이 많다. 고급 어휘일수록 그렇다. 라틴어는 이 일대를 오래 지배한 로마제국의 공용어였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유명 사립학교들은 학생들이 아무리 난해하다고 불평해도 라틴어교육을 빼놓지 않는다.
▷우리 젊은이들은 한자에 취약하다. 오랫동안 한자교육에 소홀했던 탓이다. 서울대 입시 면접시험에는 ‘한자 읽기’ 테스트가 들어 있다. 별로 어렵지 않은 한자인데도 머뭇거리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한자를 써보라고 하면 더 힘들어 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문을 두드리는 젊은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자 실력이 이 정도라면 국어이해력도 그리 높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한글교육이 우선이지만 그렇다고 요즘처럼 한자를 배제하고서는 모국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한자맹(盲)은 국익의 손실을 자초하기도 한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의 인구만 해도 15억 명에 이른다. 한국은 어차피 두 나라와 일면 경쟁하고 일면 협력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도구라 할 중국어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으려면 먼저 한자를 알아야 한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는 상대방의 문화를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도 한자는 필요하다.
▷눈을 안으로 돌리면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거의 한자로 되어 있다. 한자를 모르는 세대가 다수가 되면서 고전(古典)과 같은 우리의 소중한 유산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은 심각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세대 간 정신적 단절도 더 커졌다. 역대 국무총리 20명이 한자교육을 촉구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한자를 모르는 세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그들의 충정을 이해할 만하다. 이제 와서 ‘한글 전용파’ ‘국한문 혼용파’로 국민을 편 가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양측의 접점을 찾아 하루빨리 국어교육 내실화의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