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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길진균]서민물가, 왜 오르면 떨어지지 않을까

입력 | 2009-01-12 02:58:00


“선진국 물가는 떨어지고 있다는데 한국은 왜 물가가 오르기만 하나요. 안 그래도 남편 봉급이 줄어들까 걱정인데….”

며칠 전 동아일보 경제부로 전화를 걸어온 30대 후반의 주부는 최근 시장에 나갔더니 물가가 더 올랐다고 하소연했다.

이 주부의 ‘물가 체감지수’는 상당히 정확한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OECD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3%로 지난해 가장 높았던 7월(4.9%)보다 절반 이하로 둔화됐다. 미국은 같은 기간 5.6%에서 1.1%로, 일본은 2.3%에서 1%로 떨어졌다. 하지만 한국은 같은 기간 5.9%에서 4.5%로 1.4%포인트 내리는 데 그쳤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한 ‘MB 생활필수품’도 연초부터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52개 품목 중 우유는 1년 전보다 36%, 밀가루는 27.8% 오르는 등 가격 상승률이 두 자릿수대인 품목도 19개나 됐다.

이처럼 한국의 물가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은 첫째, 지난해 원화가치가 다른 나라 화폐보다 상대적으로 더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이후 국제 원자재 가격이 크게 내렸지만 원화가치가 떨어져 수입물가 하락 효과가 반감된 것. 둘째, 지난해 정부의 ‘단속’으로 원가가 올라도 가격을 올리지 못한 제품의 가격이 뒤늦게 오른 탓도 크다.

환율 요인에 따른 고물가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 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 손해를 계속 감수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경제 전문가들은 올바른 물가 해법은 가격단속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유통구조 개선 등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3월 “서민 물가를 챙기라”는 대통령 지시 이후 기획재정부도 “가격안정 기반을 마련하겠다”며 각종 시스템 개선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유가가 급락하자 당시 발표된 대책 중 상당수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원가 절감 노력을 하는 공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의 도입, 석유제품 선물시장 개설 등은 ‘발표’로만 끝났다. 곡물 원자재 석유제품 등의 할당관세를 낮추겠다고 했지만 세금은 잠깐 인하됐다가 대부분 환원됐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한 구조적 노력을 약속해놓고는 발등의 불이 꺼졌다고 대충 넘어가려 한다면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사겠는가.

길진균 경제부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