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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9년 재일교포 이양지 씨 日문학상

입력 | 2009-01-12 02:58:00


“이양지의 ‘유희’에 도취해 단숨에 읽었다. 민중적인 감정과 언어에 대한 감정의 차이를 다각도로 깊이 파악할 수 있었다. 걸작이다.”

“민족의식을 각성하고 고국에 유학하면서 정체성을 파악하려고 하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1989년 1월 12일, 재일교포 2세 작가 이양지(1955∼1992)의 소설 ‘유희(由熙)’가 일본의 아쿠타가와(芥川)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자 일본에선 이 같은 찬사가 쏟아졌다. 신인들을 대상으로 매년 1, 7월에 발표되는 이 상은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한국 출신으로는 이회성 씨에 이어 두 번째 수상자였다.

당시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있었다.

이양지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일본명은 다나카 요시에(田中樂枝). 그의 부모는 모두 제주 출신이었다.

그는 어려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부모 곁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즐겨 들었다. 특히 제주지역 사람들의 지난했던 삶에 관심이 많았다.

1975년 와세다대에 들어갔지만 곧 중퇴하고 소설 창작에 매진했다. 재일 한국인들의 뿌리에 대한 갈망과 고뇌를 다룬 소설을 주로 발표했다. 1980년부터 아쿠타가와상 등 각종 문학상 후보로 오르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무렵 가야금 분야의 지성자 명인을 만나면서 한국의 전통과 소리에 빠져들었다. 이를 계기로 1982년 한국 정부의 위탁생으로 서울대 국문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수상작인 ‘유희’는 서울대 재학 시절에 쓴 것이다. 서울로 유학 온 재일교포 2세 여대생 유희가 모국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건 이양지 자신의 고뇌였다.

그는 아쿠타가와상 수상 소감에서 “한국인의 눈을 통해 재일동포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 상상하지 못할 난관을 가져왔고 그래서 소설을 쓰는 데 2년이나 걸렸다”면서 “소설을 쓸 수 있게 해주고 ‘우리’라는 말이 얼마나 깊고 따뜻한지 알려준 모국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을 마치고 1992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해 소설을 쓰던 중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불과 37세였다. 재일 한국인의 모국에 대한 그리움, 그들의 인간 존재로서의 갈등과 고뇌에 천착했던 이양지. 그의 삶은 짧지만 뜨거웠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