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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그 골목엔 뭔가 있다]문래동 창작촌

입력 | 2009-01-12 02:59:00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재상가단지에 예술가들이 속속 입주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낮엔 철공소… 밤엔 작업실

쇳가루와 예술 ‘환상 궁합’

임차료 낮아 젊은 예술가들 건물 2,3층 입주

재개발 가능성에 집단예술촌 사라질까 우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은 한때 ‘대한민국 철강재 판매 1번지’였다.

1960년대 급속한 공업화로 영등포 일대에 공장들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철강단지가 형성됐다가 1990년대부터 서울 외곽으로 공장들이 빠져나가면서 사양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문래동3가 일대에는 소매상과 철공소 등이 꽤 남아 있다. 철강, 스테인리스강, 특수강, 용접, 절단, 파이프, 알루미늄…. 문래 사거리 뒤쪽에는 이런 간판을 단 소규모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오후 6시경 가게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으면 전혀 딴 세상이 펼쳐진다. 야행성 예술가들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이곳에선 낮에는 1층 철공소에서 노동 활동이 일어나고, 밤이 되면 건물 2, 3층에 입주한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에 몰두한다.

썩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예술과 쇳가루의 사이좋은 동거. 철공소의 에너지와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열기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루는 이곳은 ‘문래동 창작촌’이다. 여기에선 65개 작업실에서 150여 명의 예술가가 활동하고 있다.

○ 철공소에서 피어나는 예술의 향기

어두컴컴한 거리 곳곳에는 예술가들의 손길이 묻어 있다. 새한철강상사의 철대문은 쇠 작업을 하는 노동자를 재미있게 묘사한 김윤환 작가의 벽화 작품이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작가들은 2007년 6월에 거리축제인 ‘경계 없는 예술프로젝트#3@문래동’을 열었고, 10월에는 연합축제인 ‘물레아트페스티벌’을 개최해 시민들에게 자신들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싼 임차료다. 철강 산업이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2, 3층에 있던 중개 사무소들은 경기 시흥 등 수도권 지역으로 속속 떠났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6명이 만든 디자인그룹 ‘노네임노샵’의 김건태(34) 작가는 “유흥가가 장악한 홍익대 앞에 비해 오랫동안 시간과 땀이 축적된 공장 지대는 창작의 훌륭한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 ‘한국의 다산쯔’를 꿈꾸며

젊은 예술가들 덕분에 침체 일로를 걷던 이 지역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철공소 종사자들은 공연이나 전시를 관람하기도 하고, 행사 후에는 예술가들과 함께 삼겹살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대문이나 옥상에 그림을 그려 달라는 사람들도 있다. 예술가들은 철재 등의 재료를 공짜로 제공받곤 한다.

하지만 ‘문래동 창작촌’의 미래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지난해 시내 준공업지역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서울시 조례가 개정됐고, 인근 주민들과 개발업자들이 재개발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

‘랩39’의 공동디렉터이자 ‘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윤환 대표는 “문래동은 군수공장에서 집단 예술촌으로 변신한 중국 베이징(北京)의 다산쯔(大山子)처럼 서울의 새로운 문화명소가 될 수 있다”며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곳을 창조산업단지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