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50대의 한 저명한 교수가 사석에서 자신은 포항의 포스코나 울산의 현대중공업 같은 대규모 산업현장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해 놀란 적이 있다. 한 해 수십만 명이 찾는 관광지가 되다시피 한 곳들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한편으론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정치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명색이 국정을 다루는 국회의원 중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많지 않을까. 대기업이나 재벌 얘기만 나와도 입에 거품을 물다시피 하는 386운동권 출신 의원들은 과연 가봤을까.
모든 것을 눈으로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고 안 보고의 차이는 크다. 그곳에 가보면 적어도 기업과 지역사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근로자, 정치와 경제가 두 몸이 아니라 한 몸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대기업과 재벌에 대한 상상의 날개를 펴더라도 제대로 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비용편익분석이라는 것을 하는 전문가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대형 국책사업을 할 때 그것이 사회에 가져다주는 총편익과 총비용을 비교하는 것인데 분석의 기준으로 삼는 기간이 보통 항만은 50년, 도로는 30년이다. 도대체 무슨 능력으로 그렇게 먼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을까.
그래서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1970년대로 한번 가보고 싶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발표된 것이 1967년 5월이고, 서울∼부산 전 노선이 완공된 것이 1970년 7월이다. 이 사업에 비용편익분석 기법을 들이댔다면 과연 총편익과 총비용이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당시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40달러 정도였고,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됐을 때 이 도로 428km와 경인고속도로 29km까지를 합쳐 하루 이용 차량은 9000대에 불과했다. 그런 현실에서 과연 30년 후 하루 통행량이 50만 대나 되는 경부고속도로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또한 그것이 다른 고속도로 건설을 촉진하고, 그에 따라 자동차산업을 비롯해 우리 경제 전체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한 것까지 예측할 수 있었을까.
당시 정치권의 반응만 봐도 비용편익분석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지 짐작할 만하다. 야당은 “소수 귀족들의 자가용 향락을 위한 도로”라느니 “독재자 히틀러를 따라한다”느니 하면서 기를 쓰고 반대했다. 그러고 보면 4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무작정 반대부터 하고 보는 야당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비용편익분석이든 정치든 주어진 틀에 지나치게 얽매이고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한다면 미래를 제대로 그려낼 수가 없다. 상상력이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도로 건설이나, 보이지 않는 제도 마련이나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는 것 아닌가.
상상력이 빈곤한 정치는 저질로 흐르기 쉽다. ‘폭력 국회’가 우연히 생겨난 게 아니다. 이쯤에서 여야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서로가 반드시 대척점에 서 있어야 좋은 정치를 하는 것인가.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여야 처지가 언제 또다시 뒤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래 개척, 그리고 국민 통합을 위해서라도 이제 서로가 한 걸음씩 다가서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