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무전유죄!
궤변이 현실로 바뀌는 것보다 끔찍한 비극은 없다.
인공 장기에는 정가의 4퍼센트씩 공공세가 붙었다. 인공 장기를 살 돈이 없어 고통받는 극빈자 지원 사업으로 전액 사용되는 세금이었다. 장기를 구입한 사용자가 상품 이름과 고유넘버를 등록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비싼 장기를 선호하는 유명인 중에는 등록을 기피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왜 그래?”
석범이 앨리스 곁으로 다가와 섰다. 앨리스가 씩씩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신원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테러 위협 때문에, 신원이 불분명한 이는 출입을 금하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까? 근데 자꾸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네요. 얼굴만 척 보더라도 통과시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윽박지르고. 쌍! 이건 공무집행방해죠. 경호로봇이라면 벌써 ‘체포 및 강제 연행’을 실시했을 겁니다.”
자연인 그룹의 시위대가 앨리스와 서령을 향해 팔을 번쩍 들고 동시에 손을 흔들었다. 손바닥에 인공각막을 삽입하는 기술이 선보인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특별시연합공용어사전에는 ‘손을 펴고 흔드는 행위’를 1) 인사 2) 촬영 이렇게 두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서령이 얼굴을 가리고 매니저 뒤로 숨었다.
매니저가 주먹을 들어 빙글 빙글 빙글 쥐불놀이를 하듯 세 번 돌렸다. 가족이나 애인 혹은 친한 벗끼리 현재 위치를 알리는, ‘그대가 어디에 있든지 그대는 혼자가 아닙니다!’ 라는 따뜻한 문구와 함께 시작하는 ‘존재 확인 시스템’을 작동시킨 것이다. 새끼손톱만 한 칩을 옷깃이나 가방에 붙여두면 지하 50킬로미터 지상 50킬로미터까지 추적이 가능했다. 완벽한 고독이 어려운 시대였다.
출입문을 박차고 2미터50센티미터는 족히 넘는 거인이 성큼 걸어 나왔다. 의 사장 찰스였다. 테일 코트가 깔끔했다. 두 다리 사이로 칼슈미트왕도마뱀 꼬리처럼 둥글고 긴 기계봉이 바닥을 퉁 퉁 퉁 경쾌하게 쳤다. 찰스의 유명한 세 번째 변신다리였다. 레드 카펫으로 올라선 찰스가 서령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석범과 앨리스는 때론 무기(武器) 때론 성기(性器)로 자유롭게 바뀐다는 기계봉을 유심히 살폈다. 둥글게 말려 올라가 꼬리처럼 엉덩이에 붙기도 하고 샅 앞으로 뻗기도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나뭇가지처럼 무릎 혹은 발목을 비집고 나와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수술 전 찰스의 키는 150센티미터도 되지 않았다. 로봇 엔터테인먼트로 거금을 만진 후 스스로 하반신을 절단하고 기계 다리를 장착했다. 석범은 심각한 질병 때문에 무릎 아래로 기계 다리를 붙였지만, 찰스 같은 부자들은 신체적 능력을 남들보다 증대하거나 정신적 콤플렉스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인공 장기를 이용했다. 혐오감을 유발하는 장기 사용은 특별시연합법으로 금지되었다. 다수(多手)나 다족(多足) 그리고 다두(多頭)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찰스는 다용도 변신다리를 하나 더 달고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 좌담 프로에 출연해서는 두 다리만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사느냐고 농담까지 했다.
“오, 찰스!”
고개 돌린 서령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퉁 퉁 퉁 퉁 소리가 점점 크고 빨라졌다. 서령은 다가온 찰스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단단하고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줄줄 쏟았다.
석범은 급히 파워스마트수첩(Power Smart Note)으로 찰스와 서령을 검색했다. 두 사람의 염문설이 담긴 뉴스가 천 개도 넘게 떴다. 서령이 로봇MC 남(南)과 함께 의 핵심 시간인 밤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 를 진행하는 이유도 찰스의 배려 때문이라는 논평이 붙었다. 석범은 서령의 앞을 막고 선 앨리스의 팔목을 슬쩍 끌어당겼다.
왜 이래요?
앨리스의 초록 눈동자가 더욱 동그랗게 커졌다. 석범은 턱만 아주 조금 저은 후 팔목에 힘을 실었다.
투웅!
찰스가 세 번째 다리를 높이 들어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입술로 모였다. 찰스가 소리쳤다.
“누가 우리 피앙세를 울렸지? 어떤 놈이야? 당장 나와!”
○ 알립니다 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은 지면 게재일 전날 오후 2시부터 동아일보 홈페이지(www.dongA.com)에서 미리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