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관능에 묻히다
배우의 실제 삶과 영화 속 배역이 묘하게 겹친다.
22일 개봉되는 영화 ‘체인질링’(changeling·남몰래 바꿔치기 한 어린애라는 뜻)의 앤젤리나 졸리(사진) 얘기다.
몇 년 전이었다면 엄마 역의 졸리를 두고 ‘미스 캐스팅’이라고 이의를 제기했을 터.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졸리는 현실에서 샤일로 외에 쌍둥이를 거뜬히 출산하고 다른 아이들도 입양해 여섯 자녀의 엄마가 됐다. 한때 관능적인 분위기가 강했던 졸리는 이제 아들 잃은 엄마 역을 맡아도 어색하지 않다.
192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싱글맘 크리스틴 콜린스의 아홉 살짜리 외아들 월터가 종적을 감춘다. 5개월 만에 경찰이 찾았다며 데리고 온 아들은 생면부지의 아이다. 일단 시험 삼아서라도 애를 데려가 보라는 경찰의 억지에 소심한 크리스틴은 힘없이 떠밀린다.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감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점이다. 인물이 처한 현실을 잔잔히 응시해온 그가 이번에는 1920년대 미국의 작은 마을로 눈을 돌렸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답게 당시 로스앤젤레스의 외형뿐 아니라 허술하고 부패한 경찰 권력의 심층까지 파헤쳤다.
하지만 이 영화를 풀어나가는 핵심 키는 절대적으로 모성이 쥐고 있다. 형사에게 반항한 죄로 정신병원에 감금당한 그녀가 뒤바뀐 아이의 자리를 되돌려 놓으려는 것도, 아이는 어딘가 살아있다고 믿는 희망의 원천도 결국 모성이다. 연약한 모성, 예민한 모성, 인내하는 모성, 강인한 모성까지 다양한 얼굴의 모성을 표현해야 하는 이 영화는 엄마의 복합적인 내면이 얼마나 섬세하게 그려지느냐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두툼한 입술에 압도당했던 여전사의 이미지를 벗어던진 졸리의 연기는 예민하기만 할 뿐 강인한 모성을 표현하지는 못했다. 아들을 찾는 엄마보다 조카를 애타게 찾는 이모의 모습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만큼 절절하지 않다는 얘기다. 머릿속에 깊이 박힌 여전사의 잔영도 떠나질 않는다. 정신병원에 입소해 강제로 샤워를 당하는 나신(裸身)의 졸리는 영화의 의도와 달리(?) 지나치게 관능적이다.
왜 그녀의 애틋한 실제 모성은 스크린에서 그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졸리의 관능미는 모성에 가득 찬 엄마 역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일까. 졸리는 그저 영화를 통해 자신의 현재에 충실하고 싶었겠지만, 그의 ‘관능적 모성’은 영화에서 심각한 모순에 부딪힌다. 18세 이상.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