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에서 1급 공무원(관리관)은 ‘직업 공무원의 꽃’이라 불린다. 중앙부처라면 차관보나 실장에 해당하는 자리다. 노무현 정부 때 국장급인 2급(이사관) 및 3급(부이사관)과 통합해 고위공무원단 제도라는 것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관가(官街)에서 1급과 국장급은 하늘과 땅 차이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나 세제실장, 국세청 차장이나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핵심 요직은 국회의원들조차 ‘공개석상에서는 호통치고, 뒤에서는 민원(民願)을 할 만큼’ 실질적 파워가 세다.
▷국장에서 1급 공무원으로 승진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실무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풍(外風)도 많이 탄다. 과거에도 그런 풍조는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가 출범과 함께 정치적 판단에 따라 1급을 대폭 물갈이하면서부터 더 두드러졌다. ‘386 운동권 정권’ 색채가 강했던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념에 따른 편 가르기의 후유증까지 겹쳐 상당수 고위공무원이 마음고생을 했다. 물론 출세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개인적 성향과 어울리지 않게 ‘오버’한 사람도 적지 않지만.
▷지난해 말 1급들이 사표를 낸 상당수 정부부처의 후속 인사가 미뤄지고 있다. 정권교체에 따른 고위공무원 ‘줄사표’가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시각에 따라 찬반이 엇갈린다. 다만 인사가 늦춰지면서 공직사회의 관심이 온통 인사에 쏠려있는 현실은 걱정스럽다. 1급 자리가 오래 비어 있으면 그 아래 국장이나 과장들도 본인의 승진이나 전보에 온통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조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관료세계의 속성이다.
▷청와대가 개각의 시기와 폭에 대해 분명한 방침을 밝히지 않는 것도 문제다. 장관들이 본인의 거취도 모르는 판에 과감하게 인사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대통령은 1급 공백 장기화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최소한 개각 대상이 아닌 장관에게는 분명히 유임 언질을 주고 후속인사를 서두르게 할 필요가 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글로벌 경제위기의 태풍이 불고 있는 지금 신속하고 효율적인 위기 대책에 밤잠을 설쳐야 할 공직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인사 얘기로 술렁거리는 모습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