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14년 묵혔으니 올핸 열어보자”
잠실야구장에 있는 LG스포츠단 사무실 진열대에는 눈길을 끄는 전시물이 있다.
왼쪽 한구석에 새색시처럼 수줍게 놓여 있는 술 항아리(사진) 3개. 한눈에 보기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그 낡은 술독에는 10년도 지난 LG의 우승 한이 담겨 있다.
1994년 봄 선수단 격려차 일본 오키나와 훈련장을 찾은 구본무 LG그룹 회장(당시 구단주)은 선수단 회식 자리에 현지 특산품인 아와모리 소주를 가져왔다.
구 회장은 “올해 우승하면 축승회 때 이 소주로 건배를 하자”고 제의했다. LG 구단은 귀국길에 이 소주를 사왔고 그해 우승해 약속대로 소주를 돌려마셨다.
오키나와 특산물인 아와모리 소주는 누룩만으로 증류해 만든 알코올 도수 35도 이상의 독주다. 맛은 강하지만 뒤끝은 깨끗하다.
1995년 봄 LG 구단은 다시 한 번 우승의 기운을 받기 위해 큰 항아리에 든 아와모리 소주 3동을 사왔다.
하지만 LG는 이후 술통을 열 기회가 없었다.
지난해까지 14년 동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알코올이 다 날아간 거 아닐까”라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오래된 술통들은 개봉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2003년 이후부터는 포스트 시즌에조차 오르지 못한 LG의 올 시즌 각오는 남다르다. 거액을 투입해 이진영과 정성훈을 자유계약선수로 영입했다. 내부 경쟁이 달아오르며 팀에 활기가 붙었다는 평이다. 게다가 김재박 감독은 올해 계약이 만료된다.
해묵은 술통이 열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안성덕 LG스포츠 사장은 “일단 4강에만 오르면 축배를 위해 술통을 열겠다”고 말했다.
LG가 올가을 아와모리 소주에 취할 수 있을까.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