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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만우]건설·조선 신용평가 다시 하라

입력 | 2009-01-20 02:58:00


건설과 조선업에 대한 주채권은행 신용평가 결과가 ‘제 식구 감싸기’로 끝났다. 평가대상 111개사 가운데 퇴출이나 기업개선작업 대상은 10% 정도이고 대부분은 문제없거나 심각하지 않은 일시적 유동성 부족 수준이라는 합격점수를 받았다. 주채권은행의 이번 평가가 정확하다면 그동안 왜 돈을 묶어 두고 기업을 괴롭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90%가 합격점 ‘제 식구 감싸기’

금융감독원장이 부실 평가에 대한 사후 책임을 공언하고 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주채권은행이 문제없다는 기업을 다시 퇴출 대상에 넣기는 매우 어렵게 됐다. 이런 사태가 유발된 것은 금융감독 지휘체계가 혼란스러웠고 뒤늦게 취임한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장의 ‘신속성보다 신중성’이라는 후한 답안을 암시하는 모호한 발언도 문제가 됐다. 은행의 부실대출책임을 묻고 금융기관 사이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할 자리에 취임하는 인사가 특정 은행 내부 합병갈등을 해결했고 오랫동안 사외이사를 맡아 왔다는 경력이 부각되는 혼선도 생기고 말았다.

건설과 조선업이 우선적 구조조정 대상이 돼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정책홍보도 부족했다. 이들 두 업종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뿐만 아니라 이행보증까지 받고 있어서 부실의 여파는 치명적이다. 대한주택공사의 경우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으면서 공사를 진행하는 대한주택보증의 보증대상이다. 조선업은 관행상 거액의 선수금을 미리 받으므로 금융기관의 선수금환급보증(RG)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건설과 조선업의 대규모 이행보증으로 인해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대한주택보증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금융공기업도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부동산 경기를 등에 업고 사업을 확장한 건설사는 16만 채에 이르는 미분양 주택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고 향후 주택 수요에 대한 전망도 극히 불투명해 사업 위축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조선업은 중국 특수가 유발한 해운업 활황과 고유가로 인한 노후선박 대체수요의 폭증으로 초호황을 누리는 과정에서 저가 수주를 앞세워 중소업체가 다수 설립됐다. 지난해 9월 이후 선박 신규 수주는 자취를 감췄고 계약금을 포기하면서도 계약을 해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건조된 선박도 일거리가 없는 백수가 되어 장기간 정박을 목적으로 필리핀 수비크 만으로 예인되는 실정이다.

중소 조선사는 시설자금 조달이 어려워 건조를 중단하고 선주는 계약을 취소하고 돈을 찾아갈 기회만을 노리는 가운데 RG를 발행한 금융기관은 전전긍긍한다. 주택 청약자도 부실화한 시공업체 대신 다른 사업자가 완공하는 분양이행보다는 분양원금 환불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구조조정 시기 놓치면 모두 망해

건설과 조선업은 수주산업이어서 부실기업을 미리 추려 합병 등 구조조정을 통해 진행 중인 공사를 건전기업으로 이전할 수 있다. 구조조정 시기를 놓쳐 납기 지연으로 계약이 파기되면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금융기관을 덮치게 된다. 또 부실평가로 생존한 일부 기업주의 회사 재산 빼돌리기 등 도덕적 해이도 생기기 마련이다.

금융당국이 회계전문 인력을 대폭 동원해 주채권은행의 9월 결산서 중심 평가와 별도로 12월 결산서를 이용해 신속 정확하게 재평가해야 한다. 그 결과 주채권은행과 평가 등급의 차이가 있을 경우 주채권은행이 이를 수용하든지 아니면 추가소요자금 전액을 책임지도록 선택하게 해야 한다. 이번 구조조정은 홍수가 예견된 가운데 금이 간 댐을 고치는 일에 비유될 수 있다. 상류의 금융위기가 점점 고조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대폭적인 수리작업을 신속히 끝내야 우리 경제가 생존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