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공개된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석탑 해체 현장. 석탑 중앙의 사리공(점선 안)에서 나온 국보급 금제사리항아리와 금제사리봉안기 등 국보급 백제 유물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다. 석탑에서 발견된 아름다운 금제사리항아리(오른쪽 사진)는 다양하고 세밀한 당초무늬와 백제 공예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익산=김재명 기자 ·사진 제공 문화재청
전북 익산 미륵사지석탑 해체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들. ①미륵사 창건과 부처의 사리를 모시게 된 사연을 기록한 금제사리봉안기. 가로 15.5cm, 세로 10.5cm의 금판에 음각하고 붉은 칠을 했다. ②원형 합 ③백제의 머리꽂이 장식인 은제관식과 금제소형판. 익산=김재명 기자
■ 미륵사지석탑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무령왕릉 - 금동대향로 발견에 버금가는 성과
“무왕왕후 639년 창건” 기록… 백제사 새지평
‘이중구조-당초무늬’ 공예기술의 정수 보여줘
문화재청이 19일 공개한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석탑의 사리장엄구(사리호와 사리기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는 금제사리호(항아리)의 공예 수준이 높고 사리봉안기(記)를 통해 미륵사 창건 내력이 처음 밝혀졌다는 점에서 무령왕릉과 백제금동대향로 발견에 필적할 만한 성과로 평가된다. 백제의 사리기가 발견된 것은 2007년 백제 부여 왕흥사지 목탑 터의 창왕 시대 사리기(577년) 이후 두 번째이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이번에 발견된 금제사리호와 금제사리봉안기를 “국보 중의 국보”라고 말했다. 배병선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유물이 발견된 미륵사지석탑 1단의 사리공(사리장엄구를 넣는 공간)과 윗부분 석탑 부재 사이에 회를 발라 밀봉했기 때문에 국보급 유물이 1370년간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금제사리봉안기(가로 15.5cm, 세로 10.5cm)는 금판에 글자를 음각하고 주칠(朱漆)을 했다. 앞면과 뒷면에 193자로 창건 내력을 기록했다. 이곳에 새겨진 창건 연대(639년)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 때 미륵사가 창건됐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뒷받침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를 연모한 서동(백제 무왕)은 밤마다 선화공주가 서동 방을 드나든다는 ‘서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와 결혼했다. 삼국유사의 미륵사 창건 설화는 무왕이 왕후와 함께 용화산 못가를 걷고 있을 때 미륵삼존이 못에서 나타나자 왕후가 큰 사찰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것을 무왕이 들어줬다고 전한다.
그러나 금제사리봉안기에 따르면 미륵사를 창건한 백제 무왕의 왕후는 백제 8대 성씨 중 하나로 유력 귀족 가문인 사택씨 출신으로 드러났다. 노중국(백제사) 계명대 교수는 “사택씨는 성왕이 사비로 천도할 때 지지했던 핵심 귀족이며 좌평은 백제의 최고 관직을 뜻한다”며 “무왕이 사택적덕의 딸 외에 여러 명과 혼인했을 가능성도 있어 (선화공주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이 잘못됐는지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무왕을 ‘대왕(大王)’으로 표현했다. 백제왕을 ‘대왕’으로 표현한 기록이 나온 것도 처음이다. 이는 백제가 황제국 체제를 유지했으며 무왕의 왕권이 매우 강력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리공 중앙에서 나온 사리장엄구의 핵심인 높이 13cm, 어깨 폭 7.7cm의 금제사리호 내부에는 X선 촬영 결과 또 다른 내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금제사리호는 보주(寶珠·구슬) 형태의 뚜껑을 덮었으며 몸체를 위아래로 따로 제작한 이중구조였다. 이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장은 “세밀하고 정교한 당초무늬가 백제 공예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말했다.
금제소형판에는 석탑의 사리 공양에 참여한 백제 관리의 직급이 처음 나타났다. 금제소형판에서는 중부(中部·행정구역의 하나)의 덕솔(전체 16등급 중 4급에 해당하는 관직)이 참여했다는 명문이 확인됐다. 사리공 바닥에는 유리판이 깔려 있었으며 유리구슬 460개, 금제 족집게, 원형 합, 은제 관식, 도자(刀子), 직물 등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익산=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금제사리봉안기 원문-해석
(앞면)竊以法王出世隨機赴
感應物現身如水中月
是以託生王宮示滅雙
樹遺形八斛利益三千
遂使光曜五色行요七
遍神通變化不可思議
我百濟王后佐平沙F
積德女種善因於曠劫
受勝報於今生撫育萬
民棟梁三寶故能謹捨
淨財造立伽藍以己亥
(뒷면)年正月卄九日奉迎舍利
願使世世供養劫劫無
盡用此善根仰資 大王
陛下年壽與山岳齊固
寶曆共天地同久上弘
正法下化蒼生又願王
后卽身心同水鏡照法
界而恒明身若金剛等
虛空而不滅七世久遠
병蒙福利凡是有心
俱成佛道
가만히 생각하건대, 법왕(法王·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들의) 근기(根機)에 따라 감응(感應)하시고, (중생들의)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는) 왕궁(王宮)에 태어나셔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斛)의 사리(舍利)를 남겨 삼천대천세계를 이익 되게 하셨다. (그러니) 마침내 오색(五色)으로 빛나는 사리를 7번 요잡(오른쪽으로 돌면서 경의를 표함)하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이다.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佐平) 사택적덕(沙F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광겁·曠劫) 선인(善因)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승보·勝報)를 받아 삼라만상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삼보·三寶)의 동량(棟梁)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淨財)를 희사하여 가람(伽藍)을 세우시고, 기해년(己亥年)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
원하옵나니, 세세토록 공양하고 영원토록 다함이 없어서 이 선근(善根)을 자량(資糧)으로 하여 대왕폐하(大王陛下)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보력·寶曆)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正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蒼生)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왕후(王后)의 신심(身心)은 수경(水鏡)과 같아서 법계(法界)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 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不滅)하시어 칠세(七世)의 구원(久遠)까지도 함께 복리(福利)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소서.
번역=김상현 동국대 교수
▲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