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 동안 롱런 중인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서 제3의 주인공은? 바로 ‘멀티맨’이다.
회사부장부터 신문사편집장 아버지 점쟁이 승무원 역무원 용숙이 택시운전사 인도인 다방아가씨 바텐더 게이 사기꾼 할머니 소개팅남까지….
라디오 DJ 목소리까지 포함하면 무려 22역을 혼자 한다. 유체이탈이라도 한 듯 매번 다른 모습으로 무대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멀티맨은 ‘어디선가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도 전에 꼭 나타나는’ 독특한 배역이다. 관객들에게는 ‘김종욱 찾기’가 아닌 ‘멀티맨 찾기’로 불릴 정도로 주연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술마당 지하 2층 대기실. 오후 4시 공연을 앞두고 배우들은 막바지 대본 연습에 한창이었다. 노래로 목을 푸는 다른 배우와 달리 멀티맨을 맡은 정상훈(31) 씨의 연습은 좀 독특했다.
“음, 음, 왈왈왈∼ 스토로베리노 리슨 케어풀리 손님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 아.”
연습용 대사도 인수(人獸), 국경, 세대, 직종, 성별을 초월한 셈. 정 씨는 “배역 전환이 빠른 멀티맨에게 가장 중요한 건 순발력”이라며 “다섯 가지 정도의 발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시각 10분 전. 멀티맨을 따라 들어간 분장실은 성인 5명이 서 있기에도 비좁은 공간이었다. 분장실 책상 위에는 신발 다섯 켤레, 가발 16개, 의상 수벌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열악한 사정 때문에 의상은 일주일에 한 번 세탁한다. 땀에 젖은 의상은 선풍기로 말려서 입기도 한다.
공연이 시작되자 5분마다 한 번씩 분장실로 들어온 멀티맨. 숨을 고르고 물 한 모금 마시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번개처럼 사라졌다. 옷 갈아입는 시간은 얼추 10여 초. 그 시간에 가발은 물론 소품 신발 의상까지 착오 없이 갖춰 입어야 한다.
여기에 관객들이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바로 멀티맨의 모든 의상에 붙어 있는 ‘찍찍이’다. 의상 담당인 이경진 씨는 “단추가 달린 남방은 입고 벗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옷 뒷면에 ‘찍찍이’를 일일이 붙이는 특수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비록 감초역이지만 분장실에서 멀티맨은 특급대우를 받는다. 남녀 주인공은 직접 옷을 갈아입지만 멀티맨에게는 가발 소품 의상을 전담하는 3명이 따라붙기 때문. 이들은 멀티맨의 역할 수행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정 씨는 “많은 배역을 맡다 보니 멀티맨의 순서를 까먹을 때가 있다. 그럴 경우 분장실에서 의상 팀이 입혀주는 옷대로 배역을 기억하면 된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