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피카르와 장 피카르는 일란성 쌍둥이였다. 1884년 1월 28일 스위스 바젤대 화학과 교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둘은 어릴 때부터 과학과 모험에 심취했다.
1922년에 브뤼셀대 물리학과 교수가 된 오귀스트는 당시로선 미지의 영역이던 성층권에 가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희박한 공기 속에서 버틸 수 있도록 밀폐 기밀실이 달린 기구를 제작한 그는 47세 때 조수 콜 키퍼와 함께 FNRS1호를 타고 해발 1만5838m까지 올라갔다. 1932년 두 번째 비행에서 1만6197m의 신기록을 세웠고 총 27번의 비행으로 최고 2만3000m 상공까지 올라갔다.
가장 높은 곳을 정복한 그의 탐험욕은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돌아섰다.
그는 54세 때인 1938년부터 심해 잠수정을 제작하기 시작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중단했다. 1945년 실험은 재개됐고 1960년 미국 해군의 도움을 받아 제작된 잠수정 트리에스테에는 아들 자크가 대신 탔다. 괌 섬 주변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해연에서 1만916m를 잠수해 바닥을 보고 돌아온 자크는 “납작하게 생긴 물고기와 이전에 본 적 없는 새우가 있었다”고 아버지에게 전했다. 오귀스트는 1962년 78세를 일기로 숨졌다.
쌍둥이 형제 장은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사는 대륙이 달라도 형제의 꿈은 같았다. 미국 시카고대 교수 시절 만나 결혼한 부인 지넷과 함께 장은 1933년 시카고 박람회를 기념해 세계에서 가장 큰 기구를 제작했다.
장은 높은 고도에서 김이 서리지 않는 창문 등을 발명했으며 이 기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폭격기에 적용됐다. 장은 오귀스트가 숨진 이듬해 79세를 일기로 숨졌다.
결혼으로 피카르 가문의 일원이 된 지넷 역시 여걸이었다. 1934년에 여성으로는 처음 기구비행 자격증을 따낸 지넷은 1만7550m 상공까지 올라 성층권에 이른 첫 번째 여성이 됐다. 신앙심이 두터운 그녀는 1974년에 미국 성공회의 첫 번째 여성사제로 품을 받았다.
오귀스트의 아들 자크를 비롯해 탐험의 꿈은 2세, 3세로 이어졌다. 자크의 아들이자 오귀스트의 손자인 베르트랑은 1999년 3월 기구를 이용한 무착륙 세계일주 비행에 성공했으며 2004년부터 태양동력 글라이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장의 아들인 도널드는 열기구를 이용해 영국 해협을 넘은 첫 번째 기구 비행자였고, 미국기구협회의 전신(前身)인 미국기구클럽을 창립했다.
“아무도 가본 적 없거나, 해본 적 없는 영역이 지구상에 남아 있다면 도전하라.” 3대에 걸쳐 끊임없이 ‘인류 최초의 모험’에 도전하고 있는 피카르 가문의 가훈(家訓)은 이런 것이 아닐까.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