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평양을 방문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도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한반도 정세의 긴장상태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열흘 전에 있었던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의 전면대결 태세 선언과는 아주 다른 내용이다.
북한은 왜 다른 모습을 보일까? 대외적으로는 긴장을 원하지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긴장이 필요하기 때문일까? 북한이 내부적으로 긴장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이 최근 북한의 공세적 대남동향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질문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 내부 동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와 후계체제 준비로 인한 내부 불안정은 북한당국이 돌파해야 할 주요 문제이다. 가장 구조적인 문제는 경제난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묵인한 암시장이 사회주의 정당성을 지키는 데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점이다. 주민의 시장자유화 요구와 당국 통제 사이의 숨바꼭질은 오래된 갈등이다.
북한 내부에서 시장의 확산과 시장에 대한 당국의 통제 사이에 긴장이 더욱 심화된 계기는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 개최이다. 혈맹 또는 형제국이라고 부르는 중국이 1978년 말 개혁 개방을 선언한 이후 고도성장을 이룩한 점이 북한주민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다. 중국이 지난해 8월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사실은 북한주민에게 동경을 넘어서 충격적 사건으로 인식됐다.
같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개혁 개방을 통해 성공한 중국이라는 확실한 모델이 있는데 북한은 왜 개혁 개방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간부엘리트와 일반주민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베트남 동유럽 러시아 등 모든 사회주의는 개혁 개방으로 잘사는데 북한은 왜 개혁 개방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배급을 주지 않아서 불가피하게 시장에서 장사를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데 대안도 없이 시장을 통제하는 정부 당국을 이해할 수 없다는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금년도 신년공동사설은 개혁 개방에 대한 요구를 억압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1950년대식 노력동원 속도전 천리마대진군을 구호로 내세우고 1970년대식 당 조직 사상통제 체제로 되돌아간다고 선언했다. 개혁 개방의 요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포고령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서해상에서 남한이 북침 연습을 한다고 주민에게 허위정보를 알리면서 군복 입은 군부 대변인이 조선중앙 TV에 출연하여 남북 간에 전쟁 분위기를 조성한 모습은 개혁 개방에 대한 주민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개혁 개방에 대한 북한 당국의 역주행은 주민들의 민심에 역행하고 시대상황에 역행하며 북에도 남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남북관계를 극도로 긴장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북한이 중국과 같은 시기에 개혁 개방을 시작했다면 차기 올림픽은 평양에서 개최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이 1961년에 산업화를 시작하여 27년 만인 1988년에 올림픽을 개최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계산이 가능한 일이다. 북한은 아직 개혁 개방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니 30년 이내에 평양에서 올림픽이 개최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리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문제를 해결하여 군사모험주의라는 오명을 벗고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실현하여 국제사회에 정상적 일원으로 참여(개방)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하여 남북 간에 상생·공영을 추구하자는 정책이다. 북한이 우리 정부 대북정책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남북 간의 신뢰회복의 길로 되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