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경제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기업이 쓰러지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아이슬란드에선 정권마저 무너졌다. 개인도 가정도 회사도 나라도 성장 이전에 생존이 발등의 불이다. 이런 글로벌 위기가 언제 해소될지 누구도 자신이 없다.
각국은 ‘협력과 경쟁’의 양면 대응으로 위기를 잠재우려 한다. 금융·신용 경색을 풀기 위한 다국 간 금리 공조, 한미 한일 한중 간 통화스와프 등은 협력에 해당한다. 돈의 국경이 희미해진 시대에 순망치한(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림)을 막기 위한 ‘위기가 촉발한 협력(Crisis-driven Collaboration)’이다.
그러나 협력의 뒤편에선 총성 없는 전쟁 같은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구 차원에서 소비 거품이 꺼지고 경기가 일파만파로 침체돼 어느 나라건 기업과 일자리의 대대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이 상황에서 개인이나 회사나 국가나 경쟁력이 처지는 쪽이 먼저 희생되는 것이 시장원리요 적자생존의 법칙이다.
지금 생존의 기본단위는 국가다. 나라가 죽느냐 사느냐다.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어제 인터넷판에서 경제위기로 정권이 붕괴된 아이슬란드의 전철을 밟을 위험성이 높은 나라로 영국 라트비아 그리스 우크라이나 니카라과를 꼽았다. 작년 10월 9일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 “미국이 그들의 경제원칙을 가난한 나라들에 강요한 데 대해 신이 내린 벌”이라고 조롱했다. 그러고 넉 달도 안 돼 자신이 정권 위기를 맞고 있다.
희망, 변화, 재건 가로막는 DJ
글로벌 위기의 진앙이었던 미국은 오히려 달러의 위력을 더 과시하며 희망, 변화, 재건을 합창하고 있다. 새 지도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시장의 힘’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는 취임사에서 “시장의 힘은 부를 창출하고 자유를 신장하는 데 그 무엇도 필적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떤 처지인가. 아이슬란드 모델은 아니라고 안심해도 될 것인가. 구조조정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이 그래도 많이 강해진 점은 위안이다. 규제와 기업 때리기가 유난스러운 가운데서도 기업들은 정치나 사회 어느 부문보다도 창의적이었고 열심히 뛰었다.
반면에 정치는 정말 3, 4류다. 폭력국회와 여당의 표류는 재론할 것도 없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2009년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제1야당 민주당에 이명박 정권과의 싸움에 몸을 더 던지라고 끊임없이 사주한다. 그러면서 요즘 상황을 이 정권에 의한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규정한다.
지금 한국정치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점에 나도 동의한다. DJ는 “독재자 편에 섰던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보면서 참 안타깝고 분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자유의지로 정권을 선택한 민의마저 수용하지 않는 반민주적 독선적 발언이다. 국회에서 82석 민주당이 171석 한나라당의 다수결 입법을 쇠망치로 가로막는 것이야말로 ‘1인 1표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부정이다.
DJ가 경제와 민생의 위기를 직시한다면, 자신이 11년 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온 국민과 모든 정파의 도움을 호소했듯이 지금도 ‘온 국민과 모든 정파가 위기 타개에 동참하자’고 권유해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오로지 ‘특정 정파의 영원한 수반’이기에 집착하니 그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10년 집권 경험이 있는 민주당이 그의 이런 분열주의를 추종하는 모습 또한 참담해 보인다. 이들은 우리 경제의 위기 타개와 세계적 위기 이후의 경제력 질서 재편에서 우리가 유리한 위치에 오르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李대통령부터 낡은 도그마 깨야
하지만 현 정권은 이런 국정 방해세력 때문에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해선 안 된다. 세계 초강국 미국도 정치가 1류라고 할 수는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우리 정치를 질식시켜온 속 좁은 불평, 그릇된 약속, 남 탓, 닳아빠진 도그마들의 종식을 선언하러 우리는 이 자리에 왔다”고 말한 것에 적지 않은 병폐가 열거돼 있다.
중요한 점은 오바마 대통령이 낡아빠진 도그마들을 깨기 위해 ‘결단하고 행동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대다수 미국민이 그런 대통령을 응원하고, 야당도 상당한 협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글로벌 위기의 진원지에서 위기 타개의 출발지로 바뀐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 그리고 여야 정치권의 성숙한 ‘협력과 경쟁’이 핵심 동력일 것이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