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앞에서 고서(古書)를 읽고
등불 밑에서 글의 뜻 찾아보라
가난한 자, 책으로 인하여 부유해지고
부유한 자, 책으로 인하여 귀해지며…
책 읽어 영화 누리는 것 보았지
책 읽어 실패하는 건 보지 못했네”(왕안석 ‘권학문’ 중)》
동양문화권에서 ‘고(古)’는 훌륭하고 모범이 될 만한 것을 함께 이르는 말이었다. ‘고전적(classicus)’이라는 라틴어의 어원은 최상위 계층을 의미하는 로마의 정치제도에서 유래됐다. 고전(古典·classic)이란 대체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작품’(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으로 풀이된다.
정전의 역할을 해주는 고전의 중요성은 책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정제되지 않은 각종 정보가 난무하는 시대일수록 절실해진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서 한 장 넘기기도 힘든 고전을 붙잡고 있기란 요원한 일인 게 사실. 이처럼 고전 읽기의 필요성과 난독성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을 위해 최근 고전 읽기의 가이드를 제시해 주는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원전을 직접 접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현대인들을 위해 고전해석, 강의형 책이 인기를 끄는 것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최근 출간된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유문화사)은 퓰리처상 문학평론부문 수상자이자 워싱턴포스트에서 서평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서양고전 작가 90여 명과 그들의 주요 작품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롭게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포스트 모던한 유희와 소극, 초현실적 상상력들이 고전 속에 이미 존재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예를 들어 루키아노스(115∼200년경)의 작품들은 마치 ‘고대 그리스의 버나드 쇼’가 집필한 것처럼 패러디, 유머, 사회적 논평이 풍성하다. 저자는 루키아노스의 작품을 ‘한니발과 알렉산더는 서로 누가 더 위대한 장군인가를 놓고 말씨름…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실제로 아는 것이 없었고 자신이 생전에 한 말은 전혀 아이러니가 아니었다고 말한다’고 익살스럽게 소개한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로마시대의 지식인, 철학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였으나 현대에 들어와 2류 문학가로 여겨지게 된 키케로’ ‘세계 최초로 대중을 상대한 지식인 에라스뮈스’ 등의 재치 있는 작가 소개와 작품의 백미를 보여주는 선별된 인용문은 고전이 따분하거나 어렵기만 할 것이란 편견을 깬다. 다만 이 책은 작품의 가치에 비해 덜 알려진 작품들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국내에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책도 많다.
미국의 영화 평론가이자 저술가인 데이비드 덴비가 쓴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총 2권) 역시 고전을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낸 책이다. 영화비평가로서 영상세대의 파편화된 의식과 가치관에 절망하고 중년의 개인적 삶에서 위기를 느낀 저자는 모교인 컬럼비아대에서 고전을 다루는 인문학 강좌를 들으며 삶의 불안과 위기를 극복할 인문학 고전들의 힘을 깨닫는다. 저자는 플라톤, 단테, 로크, 하버마스 등 인류 지성사의 주옥같은 고전을 자신의 인생 또는 사회현상과 연계시키며 해석해 나간다. 지난해 출간돼 1만5000부가 판매된 이 책은 올해는 단권양장으로 재출간을 준비 중이다.
고전 읽기를 통해 무궁무진한 문화적 경험을 쌓고 삶의 통찰을 얻는 과정을 좀 더 깊이 있게 체험하기 위해서는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민음사)도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보르헤스,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문학 거장으로 손꼽히는 칼비노가 자신이 읽은 고전작품들에 대해 독창적 해석을 담아낸 독서기로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고전으로 채운 서가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깨닫게 해준다.
이 밖에도 동양의 고전을 다룬 책으로는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가 17∼19세기 조선시대 산문가 23명의 글 160여 편을 번역하고 그 멋과 의미를 설명한 ‘고전산문산책’(휴머니스트), 이 분야의 스테디셀러인 신영복 교수의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돌베개) 등이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