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식 신임 서울대 경영대학장(경영전문대학원장 겸임)은 28일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인터뷰를 갖고 “불황기의 기업은 군살을 빼면서도 다음 호황에 대비해 핵심 역량을 보전해야 한다”며 “지나친 다이어트는 영양실조는 물론 근육질(핵심 역량)의 파괴까지 불러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훈석 기자
안태식 신임 서울대 경영대학장이 말하는 ‘기업의 경제위기 대처법’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큰 기쁨 중 하나는 의외성에 맞닥뜨리는 일이다. 안태식 신임 서울대 경영대학장과의 대화도 그랬다. 안 학장은 수치로 기업을 분석하는 회계, 그 중에서도 통제와 모니터링이 중심인 관리회계를 전공했다. 그렇지만 그는 기업에는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비재무적 가치’를, 학생들에게는 학점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함을 주문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28일 서울대에서 안 학장과 만나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기업의 대응 방법과 경영대학의 운영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내용을 담은 동영상은 DBR 웹사이트(www.dongabiz.com)에서 다음달 6일부터 볼 수 있다.
○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가치 창조에 집중을
―글로벌 경제위기로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자들이 전략 수립 및 실행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위기 대응은 기업별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생존 위협을 느끼고 있다면 당연히 살아남는 데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고, 생존에 필요한 구조조정을 대대적으로 실시해야 하겠지요. 반면 생존에 위험을 느끼지 않는 기업은 군살을 빼면서도 다음 호황에 대비해 핵심역량을 보전해야 합니다. 지나친 다이어트는 영양실조는 물론 근육질(핵심역량)의 파괴까지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성장’을 중시해 왔습니다. ‘매출증가율’과 ‘이익증가율’ 등이 성과를 측정하는 핵심 지표였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재무제표(혹은 기업 내부에서 활용하는 관리회계 관련 지표) 가운데 어떤 것을 근거로 주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우선 기업들이 의사결정 구조를 성장성에서 수익성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지표를 매출과 성장 중심에서 수익성 위주로 바꾼 일부 기업들은 지금 그다지 큰 위험에 봉착해 있지 않습니다. 단, 수익성 지표 중에서도 회계이익보다는 실질적인 유동성을 나타내 주는 현금흐름 지표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위기 극복에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 가치창조와 관련한 지표들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리더십, 고객만족도, 연구개발(R&D) 능력, 핵심인재 보유 정도, 투명성 등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보통 수치화가 어렵지만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입니다.”
―경기 침체로 ‘원가 절감’이 가장 중요한 기업 활동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가 절감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는 기업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원가절감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원가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사실은 자산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기업의 핵심인력은 손익계산서 상에서는 원가 요인이 되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한 기업의 자산입니다. 자칫하면 원가를 줄이려다 핵심 자산을 없앨 수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원가절감의 핵심은 인력이나 인건비 등 ‘결과’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원가 증가를 유발하는 원인행위나 낭비요소를 없애는 것입니다.”
○ 학생들, ‘학점 기계’ 되지 말아야
―국내 경영대학과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대한 기대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중책을 맡으신 만큼 어깨가 무거울 것 같습니다. 서울대 경영대학생과 MBA 학생들을 어떤 인재로 키우는 데 역점을 둘 계획인지요.
“미래의 경영 리더들은 정직과 도전정신, 책임감, 글로벌리티(globality) 등의 기본적 소양을 갖춰야 합니다. 저는 서울대 경영대학이 앞으로 개인의 안위보다는 사회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사랑받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이며 긴 호흡으로 자기 조직과 한국 사회, 나아가 세계를 변화시킬 능력을 길러줘야 하겠지요. 저는 이를 위해 교수진과 강의의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교과외 과정을 특별히 강조해 학생들의 리더십을 길러줄 계획입니다. 교과 외 과정은 사회봉사와 스포츠 동아리 활동, 해외 인턴십 등을 포함합니다. 우선 올해부터 스포츠활동 등 교과외 과정을 시행할 계획이며, 스포츠와 관련해서는 체육교육학과와 함께 4년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 중입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학생들에게 리더십과 팀워크, 희생정신을 심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많은 경영자가 경제위기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분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옛날에 왕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보석 세공업자에게 ‘내가 기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어려울 때 낙심하지 않게 해주는 문구를 반지에 새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세공업자가 새겨온 문구는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였습니다. 위기는 언제든 찾아오지만 곧 지나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잘 버텨내기만 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임규진 미래전략연구소장 겸 DBR 편집장
정리=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b>창간 1주년 기념호에는…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창간 1주년 기념호(26호·2009년 2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이번 호에는 지난해 DBR에 실린 주요 기사를 엄선한 별책 부록 ‘Management in a Turbulent Era’가 함께 발행됐습니다. DBR는 앞으로도 경영 지식의 무한보고(無限寶庫)로서 독자 여러분께 최고의 콘텐츠를 선사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Cover Story/Paradigm Shift
지금 우리는 경제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지만 언젠가 위기는 끝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펼쳐질 것이다.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 고객은 어떻게 달라지며, 기업은 무엇을 대비해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찾아야 한다. 한국 최고의 전문가들이 DBR에서 미래의 경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위기관리 트레이닝/‘허드슨 강의 기적’ 이끈 4가지 비결
체슬리 슐렌버거 3세 기장은 갑자기 엔진이 고장 난 여객기를 허드슨 강 수면 위에 성공적으로 착륙시켜 155명의 목숨을 구하고 영웅이 됐다. 그가 위기 상황에 부딪히고 나서 해법을 판단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분. 슐렌버거 기장이 긴박한 위기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CEO 승계 경쟁에서 승리하는 비결
최고경영자(CEO) 후보 자리에 있는 경영자들이 주요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 구축에 미숙해 경영권 승계에 실패하는 사례가 있다. CEO 후보들은 현직 CEO, 동료, 직속 부하, 고객, 분석가, 주주, 이사회의 요구와 우려를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