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북간 합의의 무효화를 선언하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도발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신년공동사설(1일)과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17일)에 이어 남북간 긴장의 강도를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군이 나서 전면 대결 태세에 진입할 것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맞대응을 자제하고 버락 오바마 미국 새 행정부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자 또 한번 신호를 보낸 것이다. 군 당국은 아직 서해 NLL이나 군사분계선(MDL)에서 북한군의 특이 동향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대남 위협의 단계를 높일수록 군사적 도발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의 다음 수순은 무력시위?=군 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 경비정의 서해 NLL 침범과 MDL 기습 도발 가능성이다.
북한이 두 차례 성명에서 NLL 철폐와 폐기를 강력히 주장한 만큼 이를 뒷받침하는 모종의 군사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북한이 ‘말’에서 ‘행동’으로 단계적 수순을 밟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5, 6월 꽃게잡이 철에 서해상에서 북한이 함대함 교전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며 “그러나 북한이 늘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군 정보소식통은 “17일 북한군 총참모부 성명 발표 이후 군 당국은 북한 경비정의 서해 출항기지 일대와 NLL 주변의 북한 해군 동향을 면밀히 추적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전투기가 MDL까지 근접하는 위협비행을 하거나 북한군 초소에서 남측을 향해 총격과 같은 무력도발을 초래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남북 양측의 막대한 전력이 밀집된 MDL 일대의 국지적 충돌은 자칫 전면적인 무력대결로 비화될 수 있고, 결국 개성공단 폐쇄를 비롯한 남북관계와 대미관계의 파탄을 초래할 수 있어 북한이 이런 모험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발사를 통한 무력시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북한이 남북관계의 주요 고비 때마다 체제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활용한 단골 메뉴였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기념일 사흘 전 서해상으로 옛 소련제 스틱스 함대함미사일을 개량한 공대함미사일 2기를 발사했다.
완공을 앞둔 것으로 알려진 평북 철산군 동창리 기지에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장거리 미사일의 발사는 갓 출범한 오바마 미 행정부를 자극하고 북-미 관계의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실행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북한의 다목적 전술=조평통 대변인 성명은 대남, 대미, 대내를 의식한 다목적 조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이 군부에 이어 대남 통일전선전술을 담당하는 조평통을 내세운 것은 남한 사회의 분열을 노린 정치심리전”이라고 말했다. 위기감을 조성해 북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를 바꾸도록 한국 내 여론을 일으키려는 조치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TV 토론이 예정된 날에, 또 현인택 통일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앞둔 시점을 선택한 것도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을 제쳐두고 경제위기와 중동문제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미국의 새 행정부가 북한의 이런 부정적 움직임을 좋게 볼 리가 없다”고 평가했다.
대내적인 목적도 무시할 수 없다. 남궁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도 있는 데다 국제사회나 한국의 지원이 없는 가운데 불만이 높아질 북한 주민들의 체제 결속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현재 남북관계의 모든 문제가 이명박 정부 때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향후 발생할지 모를 남북간의 충돌 책임을 남측에 떠넘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조평통 성명은 북한의 대남전술이 총체적으로 종합된 ‘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