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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드래곤즈 이건수 사장, 3년 공들인 광양벨트 용광로 축구 ‘용틀임’

입력 | 2009-01-31 08:19:00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출근 시간대에 광양시내를 걷다보면 노란색 점퍼를 입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열성적으로 뭔가를 나눠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선거 유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남 드래곤즈 축구단 직원들이 실시하고 있는 길거리 캠페인이다.

길거리 캠페인은 시민들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건수(56) 전남 드래곤즈 사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이 사장 스스로도 2007년 부임 이후 직원들과 함께 꾸준히 길거리를 누벼왔다. 부임 3년째를 맞은 이 사장을 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공부하면서 축구하자

“명문구단이 뭘까요?” 인터뷰에 앞서 이 사장은 이렇게 되물었다. “좋은 선수들을 많이 데리고 우승컵을 많이 가져간 팀이 명문구단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프로에 걸맞는 구단 운영은 물론이거니와 제대로 된 축구선수를 길러내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남은 K리그 15개 구단 가운데 포항과 함께 유소년 클럽을 가장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팀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사장은 “그동안 K리그에서 포항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소년부터 프로까지 이어지는 틀은 더 잘 돼있다”고 자부했다. 단순히 유소년 클럽을 육성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공부하면서 축구하는 클럽’을 강조한다. 상투적인 모토인 것 같지만 철저하게 실천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소년 클럽 숙소에 도서관을 만들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이 영어나 수학과 같은 기초과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다음 학년으로 진학한 후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을 듣고 여름, 겨울 방학 때 따로 이들이 기초과목을 다시 배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사장이 직접 상용한자 1000자, 상용영어 100문항을 따로 추려내 프린트 물을 만든 뒤 정기적인 시험을 통해 학생들이 실생활에 꼭 필요한 외국어 정도는 구사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하고 있다.

○유소년 축구교실로 축구벨트 형성

전남은 광양제철남초-광양제철중-광양제철고로 이어지는 유소년 클럽 외에 엘리트 선수들이 아닌 순수 아마추어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2개의 축구교실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올해 하나 더 만들 계획. 300여명에 가까운 유소년들이 이곳에서 공과 함께 어울리며 축구에 대한 재미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이들을 관리하는 강사는 광양 시내 전직 초등학교 교장 출신들이다. 축구 기술보다 인성 교육이 우선이라는 이 사장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축구 기술은 브라질 출신 지도자를 영입해 기초부터 차근차근 교육하고 있다.

“지역의 축구교실과 유소년 클럽을 잇는 축구벨트가 형성되는 셈이죠. 유소년 축구교실 출신 학생 중 1명이 재능이 있어 보여 얼마 전 제철남초로 전학을 갔습니다. 이 녀석이 잘 성장해 나중에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아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서는 아마 난리가 날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신인 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으로 전남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15명입니다. 이들 중 몇몇은 이미 팀에서 주축선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족, 친척, 이웃들은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빠지지 않고 경기장을 찾습니다. 지역 출신 선수들이 스타급으로 성장하는 2-3년 후에는 이들을 응원하는 마을 단위 사람들로만 경기장이 가득 차지 않을까요.”

축구교실과 유소년 클럽 육성이 관중 증대를 위한 마케팅의 시작점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지역민들의 마음을 잡아라

현재 K리그는 수도권 팀들이 주축이 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거꾸로 뒤집어보면 전남과 같은 지방 구단의 역할이 앞으로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장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부임 후 가장 먼저 실시한 게 바로 길거리 캠페인이다. 직원들이 출근할 때마다 1시간씩 가두 캠페인을 벌여온 것이 지난해에만 100회를 훌쩍 넘어섰다.

“부임 초기에는 직원들에게 잔소리를 좀 많이 했습니다. 좀 더 능동적으로 움직여달라는 주문이었죠. 이제는 직원들이 어떻게 하면 관중이 1명이라도 더 늘어날까를 스스로 고민하고 의견을 제시합니다.”

홈구장인 광양전용경기장 인근 학교 학생들이 응원을 올 수 있도록 한 것도 지역 주민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이 사장이 직접 경기장 인근 학교 교장들을 만나 축구 응원이 애향심을 기르는 산교육이 될 수 있음을 강조,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이들은 현장학습 형식으로 축구장에 단체 응원을 온다. 학생들로부터 체험기를 받아 내용이 좋으면 책을 선물하고 곽태휘 등 스타선수들이 직접 사인을 해주는 등 애프터서비스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학생들은 혼자 오는 경우가 없거든요. 200-300명의 학생이면 학부모 등 가족들을 포함해 2000명 이상이 경기장을 찾는다고 보면 됩니다. 효과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6년 5800명이었던 경기당 평균 관중은 2007년에는 8300명, 지난해에는 1만1600명으로 가파르게 늘었습니다. 머지않아 전남의 홈경기가 벌어질 때면 만원관중으로 경기장 열기가 용광로처럼 뜨거워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건수 사장은?

○생년월일=1953년 1월 26일

○출생지=경기도 양평

○학력=장충고-건국대

○주요경력=1977년 포스코 입사

 2002-2004년 포스코 서울사무소장

 2004-2006 포항제철소 행정부소장

 2006-2007 포스코 건설 전무

 2007-현재 전남 드래곤즈 사장

광양 |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사진제공 | 전남 드래곤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