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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으로 흉포한 세상, 택시 몰기도 겁난다

입력 | 2009-01-31 08:43:00


"세상 무서워서 택시하기도 힘들다. 일반 손님도 택시 타기가 무섭다고 하지만 택시기사도 손님 태우기가 겁난다."

경기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 용의자가 체포된 이후 택시기사들과 손님들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손님 뿐만 아니라 택시를 모는 기사들도 심야에 손님을 태우기가 더욱 두렵다는 것. 이들은 외딴 곳으로 손님을 모시고 갈 때 특히 젊은 남자들이 타게 되면 무서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연쇄 살인 용의자 강모씨가 경기도 일대에서 경찰과 함께 사체발굴 현장에 나섰던 지난달 30일 오후 택시를 몰던 38년 베테랑 운전기사 김모(60) 씨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 놓았다.

김씨는 2년 전 서울 종로에서 심야에 차를 몰던 중 경기 남양주시 금곡으로 가자는 남자 승객을 태웠다. 허름한 7층 아파트 앞에 차를 세운 승객은 택시비가 없다며 자신의 집에 가서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리곤 그 아파트 안으로 사라졌다. 김 씨는 요금을 떼일까 싶어 얼른 뒤쫓아 가 손님이 들어간 집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기다리다 못해 문을 두드리며 돈을 내라는 김 씨 앞에 나타난 것은 식칼을 든 아까 그 손님 이었다. 간신히 그의 부인에게서 차비를 일부라도 돌려받았지만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하다.

김 씨는 “뒤에 탄 승객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금팔찌와 금목걸이를 뺏긴 적도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한 달에 두 세 명씩 강도를 당한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경기침체로 인해 경기가 어렵다. 손님을 가려 태우기도 힘들다. 그런데 모든 손님을 알고 태우는 것은 아니다. 늘 낯선 손님을 태우게 되니 두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택시기사 김동구(54·가명)씨도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13년 간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해온 김 씨는 지난 추석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추석 전날 심야에 3인조 강도를 만나 그 충격으로 1달 간 정신병원에 입원했었다고 밝혔다.

추석 연휴였지만 운전사 김 씨는 쉬지 않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악연은 서울 화양동 부근에서 30대 후반의 남자들을 만난 것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경기도 화성 근처까지 5만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세 사람은 ‘동기 동창’으로 근처에서 술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대목이라 시내에서도 잘 벌 수 있는데 굳이 멀리까지 갈까 싶어서 김 씨가 망설이던 사이, 세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운전하면서도 내내 찜찜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특히 옆에 탄 남자는 안전벨트도 매지 않고 김 씨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서해안 고속도로로 접어들 무렵 한 사람이 소변을 보고 가겠다고 차를 세웠다.

승객들이 강도로 돌변한 것은 한 순간이었다. 뒷사람이 김 씨의 운전석을 뒤로 젖혔다. 동시에 옆 사람은 청 테이프를 눈에 붙였다. 순식간에 벌거벗긴 채 손발이 묶인 김 씨는 2-3일 번 돈 30만원과 지갑 속의 돈을 모두 털렸다. 마침 추석이라 집에 가져갈 80만원을 은행에서 빼 놓은 상태였다. 강도들은 반항하는 김 씨에게 “담가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칼로 찌르겠다는 뜻이다. 털이 곤두섰다. 김 씨는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통장 비밀번호를 말했다. 그들은 김 씨를 차 뒷 좌석에 누인 뒤 깔고 앉았다. 통장에는 차 할부금으로 마련한 1000만원 정도가 있었다. 남자들은 차를 몰고 한참을 돌아다니며 10만원 씩 20번을 빼갔다. 나중에 보니 서울 신림동 편의점이었다. 그리고 다시 차를 한참 몰아 광명 근처 야산으로 끌고 갔다. 범인들은 지문 감식을 우려해 차 안을 걸레로 깨끗이 청소했다. 옆 좌석에 앉았던 남자는 김 씨의 볼을 쓰다듬으며 “협조를 잘해줘서 살려 준다. 10분 뒤에 차 키를 찾아서 몰고 내려오라. 경찰에 신고하면 가족을 몰살 시키겠다”고 말했다는 것.

그들의 협박과는 달리 김 씨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범인은 아직까지도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김 씨에게 “경기 서남부에서 이런 강도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김 씨는 한 달 간 차를 세워놓고 손도 대지 않았다. 지금도 범인들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김 씨는 “주변에도 택시를 몰다가 강도를 만나 죽은 사람도 여럿 된다. 서남부 살인 사건 범인 같은 사람을 만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별 도리 없이 당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이웃나라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일본 택시 업계는 택시기사들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 ‘도와줘요’라는 문구에 불이 들어오는 전광표시판을 장착하거나 운전석과 뒷좌석을 차단하는 막을 설치하고 있다고 9일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이 전했다. 일본 업계의 자구노력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 씨는 마침 자신이 봉변을 겪었던 지역이 이번 연쇄 살인 사건의 주무대였던 경기 서남부 지역이라는 뉴스를 들으며 등골이 더욱 오싹하다고 말했다.

강력사건이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자주 발생하는 것은 이 지역이 외지고 경찰력의 손이 덜 미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생계를 위해 늘 낯선 사람과 마주 해야 하는 택시기사와 역시 낯선 사람과 동승해야하는 손님들.

양 쪽 모두에게서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강력범죄를 유발시켜 공포를 일으키는 우리사회의 분위기부터 바꿔야하는 것이 급선무다.

김씨는 한편으로 "택시 기사도 친절해야겠지만 택시를 타는 손님들도 예의를 지켜 주었으면 좋겠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택시기사에게 반말을 하고 함부로 명령조로 이야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취객들도 조금 더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택시를 타고 내리는 손님이나 택시기사나 모두 조금은 더 편안하게 택시를 이용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영상=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yjjun@donga.com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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