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V리그가 열린 지난달 31일 서울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
이날 시범경기를 제외하고 남녀부 한 경기씩이 열렸다. 남녀 모두 2위 팀과 꼴찌 팀의 대결. 전날까지 올 시즌 최하위 팀은 2위 팀을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같은 상황이었지만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여자부 최하위 한국도로공사와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2위 흥국생명. 올 시즌 도로공사는 흥국생명과 3번 맞붙어 모두 졌다. 이날도 흥국생명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흥국생명을 꺾었다. 승리의 주역은 외국인 선수 밀라로 36점을 몰아치며 양 팀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이날 밀라는 승리의 발판이 된 4세트에서 공을 쫓아가다 발목 부상을 당했다. 코트에 쓰러진 그는 고통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경기는 중단됐다. 양 팀 선수들은 네트 주위로 모여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몇 분이 지나자 밀라는 괜찮다는 손짓을 보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그는 벤치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로 코트에 섰다. 그는 토스가 자신에게 오자 높이 날아 스파이크를 때렸다.
경기 뒤 밀라는 통증 탓에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였다. 그는 “절대로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밀라는 올 시즌 한 세트도 빠진 적 없다. 팀에서 매 경기 40% 이상의 공격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항상 웃는 얼굴인 밀라는 “물론 힘들기는 하다. 외국인 선수는 팀 내에서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여기에 온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반면 앞서 열린 남자부 경기에선 최하위 팀 KEPCO45가 2위 삼성화재에 0-3으로 완패하며 올 시즌 19전패를 기록했다.
KEPCO45 공정배 감독은 “우리 팀 선수들은 프로 정신이 없다. 끝까지 해보고자 하는 프로 정신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점이 부족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력이 결과를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지지 않고자 하는 정신이 결과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 이날 경기장에 온 팬들은 ‘프로 정신’의 차이를 봤을지도 모른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