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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홍찬식]포스텍의 꿈

입력 | 2009-02-02 02:58:00


1994년 포스텍(포항공대) 캠퍼스에 설치된 방사광가속기는 국내 기초과학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단백질 구조를 분석할 때 일반 연구소에서는 몇 개월이 걸리는 일을 이 기기를 사용하면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 국내 과학자들이 이 시설을 통해 연구결과를 이끌어낸 뒤 해외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 2007년까지 1373건에 이른다. 이 기기는 1500억 원을 들여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설치됐다. 미국과 유럽에 4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한국은 수출입국(立國)을 지향해 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했다. 상품을 나르는 길이 뚫린 뒤 해외수출을 본격화했다. 이 기기 역시 첨단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 과학기술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에 따라 설치됐다. 포스텍은 올해 정부예산 1000억 원을 지원받아 성능 확충 공사에 들어간다. 그사이 다른 나라들이 성능이 개선된 방사광가속기를 설치해 우리의 선점 효과는 반감됐다. 미국 일본은 훨씬 뛰어난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까지 만들어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가속기 업그레이드 예산을 ‘형님 예산’ 운운하는 정치적 해석이 한심하다.

▷이 기기를 보유한 포스텍은 대전의 KAIST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이공계 대학이다. 지난해 영국 더 타임스의 세계 대학 평가에서 KAIST는 95위, 포스텍은 188위로 평가돼 최고 수준까지는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백성기 포스텍 총장은 2020년까지 세계 20위권 대학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당당히 공개한다. 지금도 대학 평가의 주요 지표인 ‘교수들의 논문당 피인용(被引用)지수’는 세계 20위권에 들어 있다. 더 타임스의 평가에선 17위를 기록했다. 개교한 지 23년밖에 안 돼 학교 역사에 대한 학계 평가 점수가 낮은 것이 가장 큰 약점으로 이를 만회할 ‘평판의 창출’이 관건이다.

▷지방에 있는 포스텍 KAIST 같은 대학이 세계적인 대학이 되면 의미심장한 효과가 있다. 좋은 대학이 있으면 인재가 모여들고, 산학협동을 통해 인근 산업벨트가 활기를 띠며, 국가적 고민인 지방 침체 해결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마침 올해 울산과기대가 개교하고 내년에는 광주과학기술원이 학사과정을 개설한다. 이들 대학이 본격 경쟁하면서 세계적인 대학이 꼭 나왔으면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