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의 진화… ‘첨단’ 벗고 ‘안락’을 입다
시대 앞섰지만 쓰기 불편했던 각종 편의장치들 제자리 복귀
배기량 줄이고 출력은 더 높여…내연엔진 자동차 최고 단계에
미래에서 온 듯한 첨단 장치로 가득했던 BMW 7시리즈가 다시 진화했다. 논란이 많았던 디자인은 편안하게 바뀌었으며 탑승자를 아늑하게 해주는 편의장치는 더욱 화려해졌다. 자동차를 통해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지 송구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BMW가 들인 노력에 비해 체감되는 변화가 적었다. 이미 이전 세대 7시리즈가 너무 앞서가며 많은 것을 갖췄기 때문으로 보인다.
○ 럭셔리의 완성
BMW는 본래 3시리즈급 소형 스포츠세단에 경쟁력을 갖춘 회사였다. 최고급 대형 세단 시장은 메르세데스벤츠의 것이었다. BMW가 처음 대형 세단을 내놓은 것은 1977년이다. 시장의 반응은 호기심 정도였다. 이후 1986년의 2세대, 1994년 3세대 모델을 통해 어느 정도 입지를 확보했지만 벤츠를 넘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벤츠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2001년 4세대 7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경쟁이 벌어졌다. 좀 튀기는 하지만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i-Drive’ 등 혁신적인 운전자 편의장치를 내놓으면서 트렌드를 선도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돌풍을 일으키며 벤츠 S클래스의 판매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로부터 7년이 흘러 2008년 말 5세대 7시리즈가 탄생하자 국내외에서는 S클래스와 어떤 경쟁을 벌일 것인지, 어떤 디자인과 첨단 기술을 들고 나올 것인지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예상은 다소 빗나갔다. 디자인은 차분해졌고 깜짝 놀랄 만한 BMW만의 장비들도 없었다. 운전대 옆에 붙어 있던 기어레버는 본래의 위치로 내려왔고 모든 조작 버튼을 흡수해 버렸던 i-Drive는 사용자들의 불만이 많았던 탓인지 다이얼 주변에 자주 사용하는 기능 버튼들을 배열해 놓았다.
첨단 이미지를 약간 양보하긴 했지만 오히려 탑승자들은 편안하게 각종 장치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한결 럭셔리해졌다는 느낌이다. 반대로 말하면 4세대 7시리즈에 들어갔던 i-Drive나 기어레버 등이 멋지게 보이긴 했지만 사용자로서는 다소 불편했다는 걸 BMW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 작고 강해진 심장
4세대 750Li는 배기량이 4.8L였지만 뉴 750iL은 4.4L로 오히려 심장이 작아졌다. 대신 트윈 터보차저를 달아 출력은 더 높아진 407마력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제원상 5.3초에 불과하다. 정밀측정장비로 가속력을 직접 측정한 결과 5.4초까지 나왔다. 최고속도는 시속 250km에서 제한된다.
터보차저가 들어가면 가속하려는 순간 잠시 지체 현상(터보랙)이 발생하는데 750Li에서는 그런 느낌이 거의 없이 시원하게 가속이 됐다. 특히 터보차저로 인해 토크가 61kg·m로 기존 모델보다 10% 이상 높아져 더욱 힘이 느껴졌다. 반면 효율적인 엔진 시스템으로 연료소비효율은 높아지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줄어들었다고 한다.
핸들링과 고속안정성은 역시 BMW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날카롭고 안정적이긴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구형과 크게 달라진 점은 발견하기 힘들었다. BMW에서는 구형 모델에 비해 여러모로 향상됐다는 자료를 내놓고 있지만 몸동작이 조금 세련되면서 가벼워졌다는 것 말고는 크게 공감하긴 힘들었다. 그만큼 4세대 7시리즈부터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말이다.
이 밖에 속도와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여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전방의 사각지대를 나타내는 카메라 시스템, 야간에 어두운 곳에 사람이 있는 걸 알려주는 업그레이드형 나이트비전 등이 새로 추가됐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만약 BMW가 이전 세대 7시리즈에 모든 노력을 쏟지 않고 몇 가지 기술을 다음 세대에 내놓을 모델에 양보했더라면 지금의 신형 7시리즈가 훨씬 돋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어쨌든 7시리즈는 내연기관 엔진을 쓰는 재래식 자동차의 최고 발전 단계에 거의 다다른 느낌이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