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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다함께/함께 사는 법]삼성전자 수원연구소

입력 | 2009-02-05 02:55:00


러시아 연구원 부부 “딸 통학까지 챙겨줘 한국행 택했죠”

언어-음식 장벽 높았지만 이젠 한국어 배우고 찜질방 즐겨

24시간 도우미-전용식단 등 ‘배려’… 해외인력 600명 모여

지난달 1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의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공항 출입국 검사보다 더 까다로운 보안 절차를 거쳐 내부로 들어가자 11층짜리 DM(디지털미디어)연구소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TV, 디스플레이, 가전 등 DM 분야의 연구개발(R&D)을 책임지고 있는 곳이다.

러시아 출신 책임연구원인 알렉산드르 알신(36), 옐레나 알시나(36) 씨 부부는 이 건물 10층에서 동영상 압축과 관련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총 30∼40명으로 구성된 이 팀에는 다른 러시아인 4명과 중국인 1명이 있다.

남편 알신 씨는 모스크바대 교수 겸 연구원, 아내 알시나 씨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RAS)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최고의 엘리트 부부.

2006년 2월 삼성전자에 입사한 알신 씨 부부는 1년간 모스크바의 러시아연구소에서 일한 뒤 2007년 2월 한국에 들어왔다.

○ 좋은 대우와 세심한 배려

삼성전자의 높은 급여와 양질의 복리후생 제도는 우수한 외국 인력을 영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자녀 교육 문제까지 신경을 써 주는 세심한 배려는 외국 인력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알시나 씨는 “회사가 서울의 러시아대사관에서 운영하는 러시아학교까지 딸을 통학시켜 준다고 한 것이 한국행을 선뜻 결심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고 말했다.

물론 낯선 한국에서의 생활이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역시 언어 문제가 가장 컸다. 회사 밖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식당을 찾는 간단한 일에서조차 이들은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였다.

회사 측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GHD(글로벌 헬프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도움을 주는 한국인 도우미를 붙여 주는 제도다.

보통 외국인 30∼40명당 해당 언어에 능통한 한국인이 1명씩 배치된다. 이들은 24시간 대기하면서 병원에 가야 한다거나 화장실이 고장 났을 때, TV가 안 나오는 경우, 심지어 출산할 때도 ‘도우미’ 역할을 한다.

매운맛이 즐비한 한국 음식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외국인들에게는 만만찮은 도전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외국인 전용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 외국 인력을 위한 세심한 배려인 셈이다. DM연구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매주 금요일 중국, 일본, 러시아 음식을 돌아가면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연구소는 채식주의자인 인도 사람이 특히 많아 아예 이들을 위해 별도식단을 운용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갖가지 혜택은 삼성전자가 해외인재를 스카우트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중국 140명 △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120명 △인도 100명 △미국 40명 등 전체 600명(해외법인 제외)에 이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해외의 우수한 인력들을 데려오기 위해 나라마다 채용담당 주재원을 파견하고 있다”며 “일단 스카우트에 성공한 인재들에게는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국생활 빠르게 적응하는 외국 인력

외국인 인력들도 한국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을 넘어 점차 적극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알신 씨도 사내(社內)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라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그는 7단계 중 아직은 초보를 겨우 면한 6단계 수업을 받고 있다고 멋쩍어한다.

알신 씨 부부는 한국에서의 여가 생활에도 적극적이다.

“찜질방 좋아요. 지난해 러시아 친구 6명을 한국에 초대했는데 찜질방이 가장 기억에 남더래요.”

러시아는 핀란드와 더불어 사우나로 유명한 나라지만 한국의 찜질방은 식사, 컴퓨터, 영화 관람 등 모든 것을 한곳에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고 했다. 체스를 좋아하는 알신 씨는 주말이면 친구들과 체스 판을 들고 찜질방을 찾아갈 정도다.

“가족들끼리 여행하는 것도 너무 좋아요. 제주도가 제일 좋았어요. 두 번이나 갔죠. 두 번째는 음…. 아, 설악산도 좋았어요.”(알시나 씨)

이들의 상사인 박정훈 수석연구원은 “알신 씨 부부를 포함한 외국인 직원들은 대체로 적응을 잘하는 편”이라며 “회사 문화도 점차 외국인들이 일하기 편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다만 주말에 초대할 친구가 많지 않고, 이웃들과도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기 힘들다는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알시나 씨는 “우리 부부도, 한국인들도 모두 영어가 서투니 함께 식사를 해도 할 말이 별로 없다”며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어쩔 수 없이 서먹서먹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원=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동아닷컴 박태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