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에서 시장 경영 경제학에 대해 배웠을 뿐 아니라 경영과 인간 본성에 대해서도 배웠다” 골드만삭스에서 26년간 일하고 나서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에 오른 로버트 루빈이 이렇게 회고할 정도로 골드만삭스의 위상은 높다. 11년 전 외환위기 당시 미국 재무장관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한 그는 골드만삭스에 있었기에 정계와 행정부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마지막 재무장관으로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수습책을 마련하느라 의회에 무릎을 꿇었던 헨리 폴슨도 이 회사 최고경영자 출신이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같은 미국 투자은행들은 11년 전 외환위기 때 우리의 부러움과 질시를 받았다. 달러가 없어 내놓은 우리의 알짜배기 기업과 부동산을 척척 사들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이들을 보면 솔직히 배가 아팠다. 우리나라에도 골드만삭스에 필적하는 투자은행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었다.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제정된 것은 한마디로 우리도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세워 해외에 가서 큰소리도 치면서 고수익을 올려 보자는 것이 목적이다.
▷대기업들은 이미 작년부터 증권사를 경쟁적으로 사들였다. 자통법 시행으로 증권회사들이 증권업무는 물론이고 선물을 판매하고 펀드까지 운용할 수 있게 됐으니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양 인기를 끌었다. 은행과 보험을 뺀 모든 금융업무를 할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를 갖게 되면 은행이 부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미국 굴지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이후 투자은행들이 속속 몰락했다.
▷펀드에 투자했다가 ‘펀드통(痛)’을 앓는 국민에게 자통법이나 금융투자회사 얘기가 귀에 들어올까. 그래서인지 투자자 보호를 강화한다고 했다. 증권회사들이 고객의 투자 성향을 파악해 그에 맞는 투자만 권할 것이니 안심하고 투자하라는 얘기다. 그제 새 투자자 보호 조항에 따라 영업한 첫날, 증권회사들은 아직 준비가 덜 됐고 직원들은 미처 익숙지 않은 모습이었다. 투자자들의 책임도 있다지만 투자자 보호가 미흡하다면 새로 출범할 금융투자회사의 앞날은 밝지 못하다. 미국 투자은행들의 몰락 행렬은 골드만삭스 이상의 한국형 투자은행 모델이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골드만삭스식(式)보다 나은 투자자 보호를 포함해.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