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서 임의탈퇴 18개월… 재기 나선 비운의 에이스 김/진/우
《2007년 7월 6일. ‘제2의 선동렬’로 불리던 김진우(26)가 마지막으로 등판한 날이다. 2군에 내려간 그는 며칠 뒤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소속팀 KIA는 김진우의 임의 탈퇴를 결정했다. KIA가 허락하지 않는 한 마운드에 설 수 없는 조치였다. 18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김진우는 여러 차례 훈련을 재개했지만 제대로 몸을 만들지 못했다.
2002년 당시 신인 최고 계약금(7억 원)을 받고 12승 11패에 신인 최다 탈삼진(177개)을 기록했던 그였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2002년 신인 최고 유망주… 부상-잠적 반복에 문제아 낙인
유승안 경찰청 감독 찾아 맹훈… “아는 건 야구밖에 없었다”
김진우는 지난해 말 재기할 뜻을 밝혔다. 그리고 18개월 만에 처음으로 ‘팀 훈련’에 합류했다. 부산 동의대 야구장에서 만난 그는 경찰청 야구단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지난달 경찰청 유승안 감독님께서 저를 돕고 싶어 하신다는 인터뷰 기사를 봤어요. 전화로 허락을 받고 그날 바로 부산으로 왔죠.”
그는 1월 24일부터 경찰청 선수들과 함께 운동하고 있다. 오전 9시에 일어나서 야간까지 이어지는 빠듯한 일정. 한때 130kg까지 나갔던 체중은 114kg까지 줄었다.
“경찰청 팀이 15일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떠나요. 그곳에 따라가 100kg까지 줄이는 게 목표입니다. 캐치볼과 피칭 연습도 하지만 달리기 등 체력 훈련을 더 많이 해요.”
술 때문에 말이 많던 그였다. 요즘은 어떠냐고 묻자 ‘3개월째 입에도 안 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이냐고 다시 물었다.
“훈련이 힘들 때 맥주 한잔 생각이 간절해요. 하지만 한 잔이 두 잔 되는 게 술이잖아요.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술은 안 마실 겁니다.”
광주 진흥고 시절 김진우는 연습벌레로 통했다. 타고난 힘과 체격(키 191cm)에 훈련까지 열심히 하니 기량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엄하셨어요. 운동 말고 딴짓을 하면 무척 혼났죠. 그러다 프로에 와보니 자유로웠어요. ‘이런 세상이 있구나’ 싶었죠.”
김진우가 야구하는 시간이 줄수록 구위는 예전만 못했다. 2006년 10승(4패)을 거두며 다시 반짝했지만 2007년은 부상과 부진의 연속이었다.
“그때는 마(魔)가 끼었다고 해야 되나요? 모든 게 뜻대로 안 되다 보니 솔직히 야구하기도 싫어졌어요. 그래도 중심을 잡아야 했는데….”
임의탈퇴 처분을 받으면 연봉도 끊긴다. 그는 지금 수입이 없다. 그래도 그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지인들의 도움으로 경찰청 훈련에 합류했다.
“그동안 말만 앞세운 것 압니다. 저도 지난 일을 모두 잊고 싶어요. ‘2009년 신인’이라고 생각합니다. KIA에서 올해 안 받아주면 내년에 다시 신인으로 도전할 겁니다.”
김진우의 외아들 세헌(3)이는 아빠와 달리 왼손잡이다. 그는 “아들이 야구를 한다면 투수보다 왼손 타자로 키우고 싶다”며 “여건이 되면 딸과 아들 한 명씩 더 두고 싶다”고 했다.
김진우는 승리를 확신했을 때 하늘을 향해 검지를 추어올리곤 했다. 자신의 계약금으로 짓던 새집에서 실족사한 어머니를 위한 세리머니였다.
든든한 가장으로 돌아가는 것, 세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것, 지켜보는 팬들을 더 실망시키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위해 세리머니를 하는 것….
그가 바라는 일들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다시 마운드에 서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부산=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