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말레이반도 끝에 있는 섬마을 테마섹(자바어로 ‘바다 마을’이라는 뜻)에 세상을 쓸어버릴 듯한 폭풍이 몰아쳤다.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했다.
그때 하반신은 물고기, 머리는 사자 같이 생긴 큰 짐승이 바다에서 무지개를 일으키며 나타났다. 짐승은 포효하며 성난 자연에 맞서 싸웠고 바람은 잠잠해졌다. 안도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짐승은 바다로 돌아갔다.
인어(머메이드)와 사자(라이언)의 모습을 띤 상상의 동물이자 싱가포르의 상징물인 ‘머라이언’에 얽힌 전설. 싱가포르라는 이름도 13세기 스리위자야 왕국의 왕자가 이곳에서 낯선 동물을 보고 ‘싱가푸라(singa-pura·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도시)’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조용한 어촌마을이던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현대사의 중심으로 끌어낸 인물은 영국인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아버지가 카리브 해에서 노예무역을 하다 빚만 남기고 세상을 뜨자 래플스는 14세 때인 1795년 동인도회사 런던사무소에 급사로 취직했다. 24세 때 페낭에 직원으로 파견돼 말레이의 언어와 풍습을 공부했으며 30세 때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연합군을 물리치고 자바 섬을 점령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부총독으로 승진했다.
당시 영국은 인도와 중국을 오가는 길목인 믈라카 해협에 항구를 갖길 원했고 후보지를 찾던 래플스는 1819년 1월 28일 싱가포르에 상륙했다. 여기서 래플스는 이 땅의 주인인 조호르 술탄국의 왕이 숨진 뒤 왕자 2명이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7세기 이후 이 지역 패권을 쥐고 있던 네덜란드는 둘째 왕자를 지원했다. 이에 대항해 래플스는 첫째 왕자를 옹립하기로 결심했다. 같은 해 2월 6일 첫째 왕자를 싱가포르로 초대해 술탄으로 선포하는 한편 매달 일정액을 내고 싱가포르 전역을 동인도회사가 할양받는 조약을 맺었다.
래플스는 ‘자유무역항 건설’이라는 이상을 싱가포르에서 펼쳤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 이론이 토대가 됐다. 관세를 면제하고 중국인 말레이인 인도인들을 끌어들여 인구를 늘렸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노예도 해방하는 등 관대한 정책을 폈다.
만년에 노예해방 조치가 위법이라는 영국 법원의 판결 때문에 고생하다 45세 때 런던에서 뇌종양으로 숨졌다. 하지만 싱가포르에는 그가 처음 상륙한 지점에 동상이 지금까지 서 있고, 호텔 병원 학교의 이름에도 그의 자취가 남아 있다.
무역과 금융을 중심으로 성장한 싱가포르는 최근 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해 싱가포르 경제는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래플스의 이상과는 반대로 세계는 보호무역의 폭풍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