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깊은 단계’ 빨리 닥쳐오나
“알부자들도 휘청” 수익형 매물 1년새 36% 증가
2분기 이후 고가 부동산 본격적으로 쏟아질 듯
경기 평택시 포승읍의 벨라지오관광호텔(감정가 139억7677만 원)은 지난해 9월 경매시장에 나온 뒤 네 차례나 유찰돼 최저입찰가가 최초감정가의 40% 수준인 57억2488만 원으로 떨어졌다.
이 호텔은 수출업체가 대거 입주한 포승공단과 가까워 평소 해외 바이어들이 많이 찾았다. 그러나 수출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주고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주변 다른 호텔보다 인테리어와 시설이 좋아 100억 원에 매매된다고 들었지만 최종 계약이 무산된 것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매시장에 모텔, 근린상가, 10억 원 이상 고가 아파트 같은 ‘수익형 부동산’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통상 불황기에 경매시장에는 서민형 부동산(연립·다가구·다세대주택, 저가 아파트)→생계형 부동산(단독상가)→수익형 부동산 순으로 매물이 나온다. 경기침체의 골이 워낙 깊다 보니 불황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수익형 부동산이 매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 지난달 수도권 고가 아파트 등 222개 나와
6일 경매정보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경매에 나온 숙박시설, 근린상가(상가가 주로 있는 3층 이상 건물 전체), 10억 원 이상 아파트는 지난해 1월 163곳에서 올해 1월 222곳으로 3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경매 물건은 16% 늘었다.
최근 나오는 수익형 부동산은 입지 등이 좋은 ‘양질의 물건’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9일 경매되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5층 상가건물(감정가 50억2713만 원)은 버스정류장과 가깝고 인근에 식당도 많다. D공인 관계자는 “번화가는 아니지만 오가는 사람이 많고 배후에 주택도 밀집해 꽤 좋은 물건에 속한다”고 말했다.
수익형 부동산 가격은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이어서 불황기에 거래되기는 힘들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수익형 부동산 보유자들은 ‘알부자’라 웬만해서는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가게 놔두지 않는다”며 “고가 부동산이 경매에 많이 나오는 것은 알부자들까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불황이 심각한 단계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 투자심리 위축… 유찰 잇따라
시중에 자금줄이 마르고 투자심리도 위축되면서 수익형 부동산은 연이어 유찰되고 있다.
사우나 헬스장 등이 있는 경기 오산시 오산동의 한 근린상가(감정가 192억1476만 원)는 지난해 9월부터 네 차례나 유찰돼 최저입찰가가 79억1132만 원으로 떨어졌다. 병원 학원 등이 입점한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6층짜리 건물(감정가 95억908만 원)도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연이어 유찰됐다.
왕복 8차로 도로변에 있는 도봉구 방학동 상가(감정가 74억7793만 원)는 지하철 1호선 방학역이 가깝고 시장과 붙어 있지만 지난달 첫 경매에서 낙찰되지 않았다. 서초구 잠원동 띠에라하우스 아파트(감정가 40억 원·245m²)는 두 차례 유찰된 끝에 지난해 10월 말 27억110만 원에 간신히 낙찰됐다.
경매전문가들은 앞으로 경매시장에 나오는 수익형 부동산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무법인 산하 강은현 실장은 “경매 결정 뒤 실제 입찰까지는 6개월가량 걸리므로 올해 2분기(4∼6월) 이후부터 100억 원 이상의 고가 부동산이 대거 나올 것 같다”면서도 “투자자들은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구입을 꺼려 유찰 사태가 거듭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