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재정 조기집행’ 지자체 이례적 사전점검
경기도는 47조여 원의 예산 중에서 인건비 등 지출규모가 미리 정해져 감축의 여지가 없는 경직성 경비가 무려 76%나 된다.
정부가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올해 재정의 60%를 상반기 중에 조기 집행하라는 방침을 내려 보내자 경기도는 “사업비가 별로 없는데 예산을 조기 집행하라니, 직원들 월급을 앞당겨서 지급하란 말이냐”며 난감해 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인 다른 시도에서도 “서울시는 경직성 경비 비율이 44%밖에 안 되지만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같은 기준으로 조기 집행을 독려하고 집행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감사원 재정조기집행 실태 점검=정부가 재정조기집행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면서 일부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후에 문제점을 찾아내 책임을 묻는 것이 주요 업무인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집행 추진 상황을 사전 점검하고 정책 관련 상담 등 각종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감사원은 재정조기집행지원 센터를 설치하고 16일부터 다음 달까지 두 차례에 걸쳐 전체 감사 인력의 20%가 넘는 150명을 동원해 현장 실태를 파악하겠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점검은 정부가 내려 보낸 자금이 최종 수혜자인 기업과 민간에 전달됐는지 확인하고 조기집행을 막는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감사원 관계자는 “실적에만 집착한 비효율적인 집행과 정책 취지를 무시한 형식적인 집행 등이 우려되는 데다 정부가 제도화한 예산 집행 과정 단축을 일선 지자체나 기관에서 모르고 문의하는 등 일부 ‘엇박자’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조기 집행 문제점들=감사원은 획일적인 조기집행 독려는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하천의 수변 정비공사 등 침수에 유실될 수 있는 구조물은 충분한 정착기간을 둬야 하는데 무리하게 상반기 안에 준공할 경우 장마철에 바로 떠내려가는 ‘헛공사’가 돼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2005, 2007년 재정조기집행 당시에 드러난 문제점도 참고할 예정이다. 당시 일부 광역 지자체는 국고에서 받은 예산을 산하 시군에 바로 교부하지 않고 이자 수익을 올리기 위해 금융기관에 예치해 둔 사례 등이 있었다.
▽분위기 틈탄 예산 낭비도 추후 집중 감사=조기 집행 분위기를 틈타 예산을 낭비하고 탈법 불법 집행을 하는 ‘모럴 해저드’도 우려되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자체에서 단체장 주도로 선심 사업을 벌이는 데 조기집행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
감사원은 “재정 조기집행은 정부가 마련한 집행 단축 절차에 따라야지 불법·탈법은 면책 요건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감사원은 7월경 집중적인 감사를 실시해 조기집행 실적 부진뿐 아니라 예산 낭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