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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 주는 곳 바뀌었을뿐 생활비 궁핍 고통은 그대로”

입력 | 2009-02-09 03:14:00

정순임 씨는 올 겨울방학 동안 살 집을 마련해야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 함께 살던 사촌언니가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집을 나와야 하기 때문. 정 씨는 “살 곳이 정해지지 않으니 공부에 집중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정부 돈 받게되면 기존 교내장학금은 줄어

“아랫돌 빼 윗돌 괴기… 차라리 일감 줬으면”

선천적인 근육장애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J대 김정윤(가명·여·2007년 입학) 씨는 매학기 수강신청을 할 때마다 고민이 깊어진다. 월∼금 5일 중 2, 3일에 모든 수업을 몰아서 들을 수 있도록 시간표를 짜야 하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해서가 아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이동할 때 필요한 교통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작년 초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대학생을 위해 ‘미래로 장학금’을 만들었지만 김 씨의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지난해 700억 원이던 미래로 장학금 예산이 올해 2223억 원으로 3배나 증액됐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등록금 지원은 이미 받고 있어”=S대 정순임(가명·2007년 입학) 씨는 1학년 때는 교내 장학금과 외부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합쳐 등록금(340만 원)보다 조금 여유가 있는 400만 원을 받았다. 한 학기 60만 원의 여윳돈은 생활비로 요긴했다.

그러나 올해 1학기엔 미래로 장학금 230만 원과 교내 장학금 110만 원을 합쳐 딱 등록금만큼만 지원받는다. 미래로 장학금은 등록금 범위 내에서만 다른 장학금의 이중 수혜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씨뿐만 아니라 이미 다른 등록금 지원을 받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는 많았다. 김 씨도 1학년 1학기 때를 제외하고는 교내 장학금과 외부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왔다.

정부는 작년에 학기당 1만9000명에게 350억 원씩 지원할 계획을 세웠지만 1학기 1만2094명 221억 원, 2학기 1만7477명 368억 원만 지급했다. 쓰이지 못한 111억 원은 국고에 귀속됐다. 이미 다른 장학금 혜택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 미래로 장학금은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적조건(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갖춘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연간 450만 원까지 대학등록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정확한 수혜자 예측도 없이 예산집행 계획을 세운 셈이다.

K대 이종민(2007년 입학) 씨는 “미래로 장학금은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이점이 있다”면서도 “등록금만 지원하는 방식이다 보니 예전 장학기관들의 방식과 차별화가 안돼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괸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대학생 장학금 예산은 초중등 교육예산이 삭감되면서 크게 늘었다”며 “정책 목표대로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하려면 시행 초기인 지금부터 체계적이고 정교한 개인별 지원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학금 따로, 생활비 따로=김 씨는 한 달 생활비 약 50만 원 중 20여만 원을 택시비로 쓴다. 별다른 외출 없이 일주일에 세 번 학교만 가도 하루 2만 원씩 택시비가 들기 때문이다. 김 씨는 “성인이 된 만큼 혼자 생활을 꾸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혼자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김 씨는 두 번째 학기인 2008년 하반기 생활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했다.

정 씨는 당장 살 집을 마련해야 하는 급박한 사정에 쫓기고 있다. 사촌 언니의 월세 집에 얹혀살았는데 그 언니가 2월 말에 고향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 씨는 생활비 때문에 2007년 1학기만 다니고 3학기를 연속해서 쉬었다. 생활비를 벌어야 학업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도 좋지 않고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로 된 일감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학내 근로장학생 자리도 하늘의 별따기다. 그는 “공공기관 등에서 인턴을 많이 모집한다고 하는데 주경야독을 할 수 있도록 저녁이나 야간 인턴자리가 생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