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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토머스 프리드먼]부실 뱅크만큼 웨스트 뱅크 급하다

입력 | 2009-02-10 02:59:00


최근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몇 번째 우선순위로 꼽히느냐는 질문 공세를 받았다.

추측건대 오바마 대통령에겐 세 가지 긴급 현안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뱅크(은행), 뱅크, 뱅크’. 그중에 ‘웨스트 뱅크(West Bank·요르단강 서안지구)’는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동을 새롭게 살펴본다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흥미로운 유산을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에서는 국가재건사업에 14만 명의 미군이 투입된 반면, 서안지구에는 미 육군의 장군 한 명이 국가건설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은 최근 친미 정당과 중도파가 승리한 이라크 총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총선에서 패배한 측이 평화롭게 승복할지, 승리한 측이 정부를 잘 이끌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아랍국가에서는 보기 드문 성공 사례임에 틀림없다. 자신들의 미래를 밑바닥부터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에도 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오바마 정부가 약속한 ‘두 개의 국가 해법(Two States Solution)’을 실행하려면 우선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해야 한다. 서안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가로서의 제도와 경찰력 등을 갖추지 못했다. 오바마 정부는 위로부터의 평화계획보다는, 아래로부터의 국가제도 건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고립시키는 가장 좋은 길은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자국의 영토에 대한 통제력을 확대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서안지구의 미 육군 키스 데이튼 중장에게 주어진 임무이기도 하다. 최근 그와 함께 서안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인 예닌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자신감 넘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군대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AK-47 소총을 들고 부동자세를 취하고 미군 장교의 말을 경청했다.

미국의 안보조정관인 데이튼 중장은 2005년 부시 정부로부터 팔레스타인의 치안을 개선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2007년이 돼서야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데이튼 중장의 감독 하에 요르단 경찰로부터 훈련받은 팔레스타인 국가안보군(NSF)은 지금까지 1600명이 배출됐다. 폭동 진압에서부터 인권보호까지 모든 훈련과정을 마친 NSF는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에 의해 통제되는 유일한 군대다.

이스라엘군은 초기엔 데이튼 중장의 임무에 대해 미심쩍어했다. 그러나 그들도 이제는 서안지구 내 유대인 정착지역인 헤브론에까지 NSF의 배치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3주에 걸친 가자지구에서의 하마스와의 전쟁기간 중 이스라엘이 주목한 것은 서안지구에서는 아무런 폭발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NSF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항의시위는 제한 없이 허용했지만 이스라엘 군대와의 무력 충돌은 막았다.

예닌에서 웨딩숍을 운영하는 모하메드 아부 바크르 씨는 “아라파트 정부가 무너진 후 이곳은 혼돈 그 자체였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국가안보군이 배치된 후 많은 것이 안정됐다”고 말했다.

데이튼 중장은 한 줄기 밝은 빛을 어둠 속에 비추고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미국의 중동특사 조지 미첼은 위로부터의 평화외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서안지구에 신뢰할 만한 통치세력을 세우는 아래로부터의 노력이 없다면 서안지구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