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같은…” 다문화가정 주부의 대모
7년째 수강생들 한국생활 정착 도와
“문화 결합에 남편-시부모 역할 중요”
한국에 시집 온 결혼이주 여성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박봉수(45·여) 씨는 밤늦은 시간에 자주 이들의 전화를 받는다.
“남편과 부부 싸움을 하고 집을 나왔는데 갈 곳이 없어요. 선생님 집에서 몇 시간만 있으면 안 될까요?”
박 씨는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그래요. 빨리 와서 저랑 차라도 마시면서 얘기해요”라며 흔쾌히 허락한다.
“늦은 시간 짜증도 날 법하지만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는 것이 다문화가정을 꾸린 사람들의 얘기다.
박 씨는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런 전화를 받을 때면 마음이 무겁다”며 “다문화가정이 다툼 없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보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인천지역에서 결혼이주 여성과 그 가족들 사이에서 ‘대모’로 통한다.
중고교와 방송통신대 등에서 중국어 강사로 활동한 박 씨는 통역 자원봉사를 하다가 중국 여성들과 인연이 돼 2002년부터 다문화가정 주부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박 씨는 한국어 교육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다문화가정의 주부와 남편, 시부모 등 가족 구성원들과 폭넓은 상담을 한 뒤 이를 자신의 컴퓨터에 유형별, 사례별로 저장해두고 다른 상담 때 활용하고 있다.
그는 “다문화가정의 가장 큰 갈등은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에서 많이 생긴다”며 “외국 출신 며느리를 맞이하기 전에 시부모를 상대로 그 나라의 문화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문화가정이 깨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박 씨는 “남편들이 인식을 바꾸지 않은 채 가정을 꾸리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너는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 법을 따라야 한다” “너는 내가 돈 주고 사왔다”는 등 남편의 편견이 다문화가정을 깨는 주된 원인이라는 것.
그는 또 “한국에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남편과 시부모가 무조건 다그치는 것이 가정불화의 원인인 만큼 외국에서 시집온 여성들을 여러 강좌에 참여시켜 이른 시일 내 한국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한국에 혼자 들어와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신부를 위해 결혼식 준비를 돕는가 하면 출산에서부터 출산 도우미 신청방법, 산후조리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마트에서 물건 고르는 방법부터 간장, 조미료 사용방법에 이르기까지 자상하게 알려주며 친정어머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온 누엔티베녹(22) 씨는 “박 선생님이 우리에게 쏟는 정성을 보면 이역만리에 떨어져 있는 친정엄마가 떠오른다”며 “강좌가 끝나고 선생님 집에 모여 맛있는 한국 음식을 나눠 먹을 때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하루 종일 한국어 강의를 하고 집에 들어와 다시 결혼이주 여성들과 상담을 하는 저를 이해해 주는 남편과 아들들에게 고맙다”며 “다문화가정을 위한 종합복지관을 짓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