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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아내의…’ 대중에게 먹혀드는 이유

입력 | 2009-02-17 02:55:00


표정 연기에 빨려들고…

원색 대사에 중독되고…

《‘이렇게 가다간 영화가 멸종되지 않을까?’ 요즘 TV 프로그램을 통틀어 최고 시청률을 기록 중인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걱정이 스친다. 이토록 극단의 감정을 시도 때도 없이 보여 주는 드라마는 일찍이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막가는’ 설정은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만하지만, 등장인물 간의 치열한 갈등을 원료로 해 이 드라마가 증기처럼 뿜어내는 에너지는 강력한 중독성을 발휘한다. 충격적인 장면과 대사를 통해 이 드라마가 대중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근본적인 원인에 접근해 본다.》

○ 표정의 스펙터클

일주일에 5일간 매일 10분 이상씩 눈꺼풀을 뒤집으며 분노하거나 울부짖는 악녀 ‘신애리’ 역의 김서형, 그녀가 보여 주는 연기는 폭발적이다. 아, 그녀는 오염된 인간인가,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인가, 아니면 뼛속부터 저주받은 악마인가. △시아버지의 금괴를 훔쳐 달아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TV를 망치로 “잇잇!” 하며 까부수다가, 시아버지에게 발각되자 화들짝 놀라는 장면(사진①) △가로챘던 친구의 남편(정교빈)이 다시 새로운 여성(민소희)과 눈이 맞아 함께 차를 타고 사라지자 절규하는 장면(사진②) △금괴를 훔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통보받자 부엌으로 가 미친 듯이 비빔밥을 퍼먹으면서 시어머니를 향해 “이 밥 먹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죠! 온 식구가 똘똘 뭉쳐서 저 쫓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저 이 밥 먹고 버텨야죠” 하는 장면(사진③)은 영화 ‘올드 보이’의 최민식 이후 내가 목격한 가장 뜨겁고 끔찍한 표정이다. 가히 ‘신애리 막가는 표정 3종 세트’다.

한편 남편 역을 맡은 변우민도 데뷔 이래 최고의 기량을 보여 준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재혼한 뒤 또 다른 여성에게 유혹당하는 그의 표정(사진④)은 ‘멍청무구’(멍청함+순진무구함)한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 대사의 스펙터클

“내 인생 송두리째 앗아간 죄, 평생 다 갚고 죽어!”로 대표되는 이 드라마의 대사는 직설적이고 원색적이다. 하지만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특정 단어가 반복 등장하면서 인물의 캐릭터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시어머니(금보라)가 한탄하며 못된 새 며느리에게 내뱉는 대사에는 ‘철심’이란 광포한 단어가 빈번히 나와 시청자의 오감을 자극한다.

“아유, 세상에. 내가 눈에 ‘철심’을 박았지. 저런 살쾡이를 며느리 삼고 싶다고 내가 그 난리를 피웠다니….”

“얘가 ‘철심’을 씹어 먹었나? 어떻게 시부모 앞에서 염치도 자존심도 없이 큰소리야! 내가 이걸 그냥!”

이 드라마의 대사는 한 번만 들어도 쏙쏙 들어온다.

첫 번째 이유는 대사에 감춰진 운율 때문. 리듬을 타고 살짝살짝 변주되는 대사들은 유치하면서도 묘한 중독성이 있다. 자신을 버린 남편에게 복수를 다짐하면서 주인공인 민소희(장서희)가 읊조리는 대사(“정교빈! 넌 아내인 날 무시했고, 여자인 날 모욕했고, 그리고 엄마인 날 죽였어!”)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명연설(“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만큼이나 리드미컬하다.

두 번째 이유는 창의적인 비유법 때문. 일견 진부한 듯하면서도 곱씹어보면 살아 꿈틀거리는 은유법이 대사 곳곳에 출몰한다.

“어떤 남자가 바람을 피웠다면 그 남편을 지키지 못한 부인에게도 책임이 있어. 사랑엔 유통기한이 있단 얘길 하고 있는 거야. 냉동보관을 하든, 방부제를 뿌리든 사랑이 썩지 않게 네가 신경 써야 했어.”(신애리가 남편을 빼앗긴 여주인공에게)

“아이고!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고, 단무지는 자장면 편인데…. 그놈이 그놈이지. 핏줄이 어디 가겠어요?”(여주인공의 어머니가 딸을 학대한 사돈집의 착한 고모에게)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동아닷컴 박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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