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출발점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이 주창한 ‘위대한 사회’ 정책은 베트남전 실패와 함께 좌절됐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돼 보수 세력은 다시 결집하게 됐다. 그러나 베트남전 비용 과다 지출 후유증과 세계적인 경제 침체로 인플레이션이 왔고 닉슨 정부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어 지미 카터 행정부도 출범과 동시에 많은 문제에 봉착했다.
1970년대 초부터 계속된 인플레이션과 미국 제품의 경쟁력 약화, 석유 파동에 의한 자동차산업 침체는 심각한 지경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베이비 붐 세대가 한창 사회에 진출할 시기였기에 실업률은 더욱 증가했다. 카터는 이 난관을 해결하지 못했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경제의 침체는 정점을 맞게 된다.
이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81년 2월 18일 ‘레이거노믹스’(레이건과 이코노믹스의 복합어)라는 경제 정책을 발표한다.
레이거노믹스는 세출 삭감, 소득세 대폭 감세,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의 완화, 안정적인 금융 정책으로 요약된다.
이는 과거 경제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존 케인스의 ‘유효수요론’에서 벗어난 것이어서 크게 관심을 모았다. 당시 미국 경제가 당면했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에서의 인플레이션)을 치유하는 데는 종전 케인스류의 수요 관리만으로는 미흡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공급을 자극함으로써 파급 효과가 수요의 증대로 미치게 한다는 ‘공급의 경제학’이 필요했다.
공급의 경제학은 당시 이론적으로는 정립이 돼 있었으나 정책에 반영되기는 처음이어서 레이거노믹스는 시금석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레이건 정부는 결국 ‘쌍둥이 적자’(재정수지 적자+경상수지 적자)에 허덕였다.
지난달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자국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재정수지 적자를 막기 위한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감세 축소’가 큰 틀이다.
보호무역 강화로 미국 제조업체가 활기를 되찾으면 세금도 늘어 재정수지가 좋아질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현재 재정적자가 금융위기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막대한 경기 부양 재원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것과 극심한 경기 불황에서 부자들이 오바마의 정책에 얼마나 따라 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