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바 사장,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KISA) 부회장, 한국와인소믈리에학회(WASSOK) 이사.
서울 한남동 하이페리온 옆에 위치한 와인바 ‘르까뱅’을 운영하고 있는 유병호(40) 사장의 명함에 적혀있는 문구다. 그런데 그는 이런 타이틀에 앞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바로 ‘소믈리에 유병호’다.
“소믈리에라고 얘기하는 게 가장 좋아요. 강의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와인 애호가로서 이게 제일 우선이에요. 소믈리에로서의 일이 가장 중요하죠.”
아이러니컬하게도 술은 그에게 아주 부담되는 직장의 일과였다.
무역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소주 2잔 이상을 못 마시는 주량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러다 홍콩 주재원으로 나간 뒤 비즈니스 때 마다 와인부터 먼저 얘기하는 문화를 접하면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음식과 함께 먹으니까 맛있고, 또 다른 술과는 달리 많이 마시지 않아도 더 마시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 좋았단다.
“와인이 비싼 편이잖아요. 제가 그만 마신다고 하니까 오히려 감사하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주말만 되면 주재원들은 가족과 함께 모였는데 바비큐 불 피우고, 애들 챙기는 일이 귀찮아서 핑계를 대고 빠져나갈 구실을 찾다 홍콩에 있는 WSET(영국의 와인교육기관)에서 와인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취미로 와인을 익힌 그는 파키스탄 지점장 발령과 함께 회사를 그만 두고, 로마로 여행을 떠난다. 와인이 트렌드라는 것을 감지하고 와인바를 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로마에 주재원으로 있는 형의 도움을 받아 와이너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가벼운 여행으로 시작한 여정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다시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로 이어지면서 3년을 채운다.
“부르고뉴의 한 레스토랑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맞은 편 테이블에 있는 아저씨도 혼자 먹고 있더라고요. 합석을 했고, 와인 얘기를 하다 그 아저씨를 따라 DRC에 갔죠. 점심부터 9시간 테이스팅하는데 손을 못 놓았어요. ‘로마네콩티’를 버티컬로 4개 빈티지를 테이스팅했는데 화려한 향에 미치는 줄 알았죠. 시음이 끝난 후 알았는데 그 아저씨는 호주 애들레이드 인근 대학에서 와인을 가르치던 분이더라고요.”
와인을 공부하고 국내로 돌아온 그는 2004년 현재의 ‘르까뱅’을 오픈했다. 인근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어 주위의 걱정이 많았지만 동호회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자리를 잡았다.
“싸이월드 동호회 ‘와인과 사람’의 도움이 컸어요. 음식을 곁들인 시음회를 많이 했고, 한번 오신 분들이 다시 오면서 손님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청바지를 입고 손님에게 편하게 접근하니까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는 와인에 대한 느낌을 자신의 경험에 비춰 자연스럽게 표현하기를 권한다. “예를 들어 시골에서 살던 분은 ‘칡뿌리 같다. 메주 뜰 때의 향이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런 느낌이 오히려 공감돼요. 굳이 전문가의 테이스팅 노트를 보고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 없어요.”
글·사진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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