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의 박태환 나오지 말란법 있나”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지만 사이클은 여전히 비인기 종목이다. 올림픽에 육상과 수영 다음으로 많은 18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지만 한국은 동메달도 구경한 적이 없다. 그런 사이클에서 올림픽 메달을 따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다. 최근 4년 임기의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을 맡은 구자열 LS전선 회장(56·사진)이다.
“이상은 높을수록 좋으니 이왕이면 금메달을 목표로 해야죠. ‘사이클의 박태환’이 나오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 1주일에 2번은 사이클 출퇴근
그가 회장이 되자 사이클계는 두 손 들고 반겼다. 능력 있는 기업인이기도 하지만 구 회장 자신이 사이클 마니아이기 때문이다.
“1주일에 두 번 정도 집(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회사(경기 안양시 LS타워)까지 자전거로 출근합니다. 우회하다 보니 40km 정도 되는데 차로 가는 것보다 시간이 덜 걸려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많다. 그 정도로는 마니아라 하기 어렵다. 그의 자전거 사랑은 주위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를 넘을 정도’다.
구 회장은 2002년 트랜스 알프스 대회에 도전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알프스 산맥 절벽을 오르내리며 8일간 650km를 달렸다.
“해발 3000m를 넘어가니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내가 한국 대표다’라고 생각하고 페달을 밟았죠. 집사람(이현주 씨·52)은 걱정이 돼서 냉수 떠놓고 기도했대요. 오죽하면 자기 이름을 ‘완주’로 바꾸고 싶었다나요.”
그의 오른쪽 귀에는 고교 2학년 때 얻은 상처가 남아 있다. 사이클을 타고 언덕을 내려오다 갑자기 끼어든 택시를 들이받았다. 하필 브레이크를 고치러 가던 길이었다. 택시 뒤 유리가 박살났고, 구 회장은 머리뼈에 금이 갔다.
“5시간 넘게 수술을 받고 겨우 목숨을 건졌죠.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집어 던지며 불같이 화를 내시던 기억이 납니다.”
○ “일반인 참가 프로암대회 활성화”
그는 초등학교 시절 야구(포수) 선수를 했고, 대학 때는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다. 가끔 친다는 골프는 싱글 수준이고 스키장에 가면 가장 어려운 코스에서 보드를 탄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철인 CEO(최고경영자)’. 그러고 보니 근육질 상체가 운동선수 못지않다.
“4년 전에도 연맹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그때는 회사일로 바쁠 때라 고사했는데 지난해 말 실무에서 한발 물러난 뒤 여유가 좀 생겼지요. 봉사하는 마음으로 나섰습니다.”
3월 취임식을 앞둔 구 회장은 17일 첫 이사회를 주재하며 사이클 회장으로서의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투명한 운영을 통해 다른 단체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 연맹을 만들자고 강조한 그는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이사회에서 난관에 부닥친 사업 계획을 보고받은 뒤 이사들이 기탄없이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귀 기울여 듣고 난 뒤 과감하게 결론을 내렸다. 기업을 이끌며 수없이 경험해온 의사 결정 노하우가 녹아 있었다.
“사이클 저변 확대를 위해 골프처럼 일반인이 참가하는 프로암대회를 활성화할 생각입니다. 회장 직속 기관으로 훈련강화위원회를 운영할 거예요. 이를 통해 유망주를 발굴하고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 사이클 본고장 유럽으로 전지훈련을 보낼 계획입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것 같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그동안 관심을 끌지 못했던 사이클에 주목해도 될 것 같다.
안양=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구자열 회장은
▽생년월일=1953년 3월 2일.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의 넷째 동생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장남 ▽출신교=장충초-중앙중-서울고-고려대 ▽가족=부인 이현주 씨(52)와 1남 2녀 ▽취미=각종 스포츠, LP판 수집 ▽주량=소주 1병 ▽주요 경력=럭키금성상사 상무, LG증권 영업총괄 부사장, 현 LS전선 대표이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