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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7년 NBC ‘쉰들러 리스트’ 방영

입력 | 2009-02-23 02:54:00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독일인 오스카 신들러가 폴란드에 있던 자기 공장에 유대인을 취직시켜 아우슈비츠의 대학살로부터 구한 실화를 그렸다.

나치 강제수용소의 생존자였던 레오폴트 페이지 씨는 198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에서 상점을 운영할 때 가방을 사려고 들른 호주 소설가 토머스 케닐리에게 전쟁 당시 이야기를 들려줬다.

페이지 씨는 아내와 함께 신들러의 무기공장에서 일했다. 학살을 면한 유대인 1100명의 명단에 그의 이름이 173번째로 올라 있었다. 이를 계기로 2년 뒤에 소설 ‘신들러의 방주’가 나오자 페이지 씨는 스필버그에게 전화를 걸어 “아카데미상도 탈 것”이라며 영화로 만들도록 종용했다.

스필버그는 유니버설 사장에게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흑백 필름에,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폴란드 출생의 야누시 카민스키를 촬영감독으로 삼겠다는 내용. 유니버설이 망설일 때 MCA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쥐라기 공원’을 자기네 뜻대로 제작하면 ‘쉰들러 리스트’는 맘대로 해도 좋다고 했다.

소설 출간 10년 만인 1992년 12월 영화 제작이 시작됐다. 첫 촬영은 이듬해 2월, 영하 15도의 강추위 속에 아우슈비츠에서 진행했다. 그해 열린 제66회 아카데미 시상식장은 ‘쉰들러 리스트’의 독무대였다. 작품 감독 편집 촬영 음악 각색 미술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했다.

NBC는 이 영화를 1997년 2월 23일 다시 방영했다. 미국 공중파로는 처음으로 중간광고가 없는 방식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포드자동차의 광고는 영화 시작 전과 끝에만 나왔다.

‘쉰들러 리스트’가 개봉되기 몇 개월 전에 ‘쥐라기 공원’이 발표됐는데 대박이었다. 미국에서만 3억9800만 달러, 전 세계에서 9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공룡 붐을 일으켰다. ‘쉰들러 리스트’가 TV로 소개되고 2년 뒤에 스필버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상금 대신 오스카라는 애칭의 사람 입상(立像)을 수여해서 아카데미상을 오스카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스카(Oskar) 신들러와 오스카(Oscar)상. 스펠링은 다르지만 발음이 비슷한 오스카와 스필버그의 인연이 흥미롭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