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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대기업 63% - 中企 37% “취업재수생 채용 꺼린다”

입력 | 2009-02-24 02:57:00


동아일보-잡코리아, 688개사 인사담당자 설문

“동료-상사관계 불편해져” 면접서 불이익

나이차별 금지 내달 시행 불구 ‘장벽’ 여전

《#1. 이화여대 대학원을 2006년 졸업한 김모 씨(30·여)는 최근 대기업 입사의 꿈을 접었다. 김 씨는 졸업 직후 1년 반에 걸쳐 주요기업 100여 곳에 원서를 냈지만 나이에서 걸려 모두 낙방했다. 최종까지 올라가도 면접관들은 “나이가 많은데 지금껏 뭘 했나” “당신보다 어린 상사 밑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는가”라며 퉁명스러운 질문을 던지기 일쑤였다. 결국 김 씨는 연령 제한에서 자유로운 공무원 시험 준비로 방향을 틀었다. 김 씨는 “정부가 연령 제한을 법적으로 금지해도 민간기업이 실제로 따를지는 장담할 수 없다”며 “다시는 대기업에 원서를 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 지난해 12월 GS칼텍스에 입사한 A 씨(31)는 열 살 어린 여자 동기와 함께 한창 연수를 받고 있다. A 씨는 학사장교를 거쳐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느라고 늦깎이 입사를 했다. 명문대 출신으로 세계적 컨설팅 회사에서 6개월간 인턴으로 일하는 등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A 씨지만 대기업 서류심사 과정에서만 다섯 차례 떨어졌다. 그는 “나이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면접을 볼 때 고령(?)의 핸디캡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최근 경기불황으로 ‘취업재수생’이 급격히 늘면서 신입사원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진입 장벽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다음 달 22일부터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시행에 들어가 채용 시 연령 제한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사업자에게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기업은 채용공고에서 연령 제한을 이미 없앴다. 하지만 실제 채용 과정에선 여전히 ‘늙은 신입사원’에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한 살이라도 어린 신입사원을

동아일보 산업부가 채용정보업체 잡코리아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688개 기업의 지난해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27세. 이 중 202개 대기업과 31개 외국계기업 신입사원들은 각각 평균 26.6세로 중소기업(27.2세)보다 0.6세가량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인력풀을 갖고 있는 대기업이 한 살이라도 어린 신입사원을 선호하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구인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은 채용 과정에서 연령 제한을 둘 만한 여력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 규모별 인사담당자들의 인식 차이에서도 이런 경향은 감지된다.

인사담당자 68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취업재수생 채용이 다소 꺼려지십니까”라는 질문에 대기업 인사담당자 202명 중 63.4%(128명)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반면 외국계기업과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는 각각 0%와 37.1%로 집계됐다.

또 취업재수생은 채용 과정에서 ‘감점’을 받는다고 응답한 인사담당자 비율도 대기업이 45%로 가장 높았다. 중소기업은 32.1%, 외국계기업은 0%였다.

아예 입사지원 단계에서 취업재수생을 제한한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대기업(8.9%) 중소기업(7.5%) 외국계기업(0%) 순으로 조사돼 대기업의 연령 제한이 상대적으로 더 심했다.

실제로 채용정보업체 커리어에 따르면 지난달 등록된 채용공고 4만2371건을 분석한 결과 연령 제한을 두지 않은 기업은 공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이 각각 63.8%(458건)와 63.1%(1만4698건)에 달했지만, 대기업은 49.9%(4439건)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 연공서열 위주 조직문화가 이유

취업재수생을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 대기업 인사담당자 128명은 △상사나 동료들이 불편해해서(42.2%) △중복합격으로 이탈 우려(29.7%) △업무능력 의심(14.8%) △기업문화 적응 애로(7%) 등을 꼽았다. 중소기업 인사담당자 169명도 △상사, 동료들이 불편해해서(23.7%)를 가장 많이 꼽아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조직 내 인간관계를 의식해 취업재수생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취업공고에서 연령 제한을 없애 서류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나이든 신입사원이 오면 조직생리상 불편한 부분이 있어 면접 과정에서 걸러내는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취업재수생의 경우 특출한 재능이 없는 한 채용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기업들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취업재수생에 대한 불이익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잡코리아 황선길 이사는 “채용 시 연령 제한을 철폐하려면 기업들이 연공서열 위주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에서 벗어나 상하가 대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문화로 바꾸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