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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다함께]외국인 유학지원 프로그램

입력 | 2009-02-25 02:58:00

“한국 널리 알릴게요”23일 이화여대 졸업식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케냐 출신의 무틴다 아델라이드 씨(앞줄 가운데)와 말레이시아 출신의 카마루딘 눌이아나 씨(앞줄 오른쪽). 이화여대 ‘이화 글로벌파트너십 프로그램(EGPP)’의 첫 학부 졸업생이다. 이들은 삼겹살과 소주에 대한 추억도 얘기했고 한국에서 배운 지식을 조국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사진 제공 이화여대


“지한파 글로벌 리더 육성” 대학들 개도국 인재 유치 앞장

이화여대 16개국 50명에 장학금… 경제 노하우 전파

서울대 - 고려대도 공무원 교육-공동연구 적극 참여

“다문화 시대 대비 일방지원 벗어나 상호 교류 필요”

《23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앞.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 여성,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이 학사모와 학사복을 입고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삼겹살과 소주의 맛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졸업을 하게 돼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국으로 돌아간 뒤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긴장도 됩니다.” “무슬림이라 술이나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어서 불편했지만 한국 생활은 좋았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는 점, 그래서 무언가를 이뤘다는 점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케냐 출신의 무틴다 아델라이드 씨(24·국제학부)와 말레이시아 출신 카마루딘 눌이아나 씨(26·국제학부)의 얼굴엔 설렘과 긴장이 가득했다. 이들은 개발도상국의 우수 학생을 선발해 유학비용 전액을 지원하는 이화여대 ‘이화 글로벌파트너십 프로그램(EGPP)’의 첫 학부 졸업생이다.》

○ 다문화 시대, 대학에서 지한파를

이들은 25일 조국으로 돌아가 일을 하게 된다. 국제학부 과정을 통해 배운 한국어와 기타 외국어, 국제정치학과 국제지역학 등의 실력을 유감없이 활용할 생각이다.

아델라이드 씨의 꿈은 외교관. 그는 “우선 유엔개발계획(UNDP)이나 국제민간기구 등에서 국제전문가로 경력을 쌓은 뒤 외교관이 돼 한국과 케냐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눌이아나 씨는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면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며 “빠른 인터넷과 어디서든 잘 되는 휴대전화 등 한국의 전자통신 기술을 모국에 전파하고 싶다”고 밝혔다.

EGPP는 2006년 창립 120주년 기념사업의 일부로 추진돼 현재 16개국 50명의 개발도상국 여성 인재들이 이화여대에서 공부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의 사회적응을 돕는 다문화 가족 음악 방송의 DJ로 활동하는 필리핀 출신의 마리아 레지나 알키자 씨(25·광고홍보학과), TV에 출연해 유명해진 태국 출신의 타차폰 와자삿 씨(21·방송영상학과), 몽골상공회의소 한국 대표와 한국 몽골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몽골 출신의 바트 바게렐 씨(35·국제사무학과 석사과정) 등 이들의 국적과 면면은 다양하다.

이에 대해 이화여대 관계자는 “고도 경제성장의 경험과 노하우를 해외 개발도상국 젊은이들에게 전파하는 것은 다문화 시대에 있어 대학의 중요한 과제”라며 “모국으로 돌아간 졸업생들은 각국의 리더이자 지한파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은 정보통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의 정보통신 분야 공무원들에게 무료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03년부터 개설해 운영해온 정보기술(IT) 분야 석박사과정인 ITPP(International IT Policy Program). 2008년도까지 31개국 출신 62명의 정보통신분야 공무원을 선발해 교육을 지원했다.

ITPP는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교육에 국한하지 않고 태권도, 전통문화 체험 등 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포함시켜 한국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프로그램 역시 궁극적으로는 지한파 공무원 양성, 통신정책전문가의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 다문화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 ‘한국형 에라스무스 프로젝트’는?

국내 대학에는 개발도상국 인재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이에 대한 프로그램도 늘려야 하지만 일방적인 지원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유럽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Erasmus programme)처럼 ‘주고받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은 1987년부터 시작된 유럽연합(EU)의 학생교환 프로그램. 15세기 네덜란드 출신의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의 이름을 딴 이 프로그램은 자유로운 인적 교류로 유럽 통합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우리의 경우, 한중일 동아시아권의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에서 에라스무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고려대가 참가하는 ‘아시아MBA’가 대표적이다. 고려대, 중국의 상하이 푸단대, 싱가포르 국립대가 함께 아시아 경영을 주제로 금융시장 분야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 외에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지역 교환 여름학교(trans regional summer school)’ 등이 있지만 아직은 본격적인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문우식 교수는 “교육과 인적 네트워크 등의 교류가 왕성해지면 자연스럽게 다문화사회로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현재 한국에서는 교환학생, 공동학위제 등 대학들 간 국제교류가 이뤄지고 있을 뿐 에라스무스 프로젝트에 비견될 만한 제도는 없다”고 말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의 유석진 교수는 “에라스무스 프로젝트는 EU와 같은 통합된 공동체에서 장시간 논의를 통해 완성된 것”이라며 “동아시아에서도 이 같은 프로젝트를 추진해 다문화 시대에 걸맞은 지적 교류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