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골목길의 연극 ‘레지스탕스’(각색 박근형·연출 이은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저항군의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초 러시아혁명기 세르게이 대공 암살을 둘러싼 젊은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제목이 레지스탕스인가. 이 연극의 극본을 쓴 작가가 2차대전 때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던 알베르 카뮈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민중해방을 위해 차르 독재체제 타도에 목숨을 바치기로 한 5명의 젊은이가 뭉친다. 사회주의 혁명가를 자처하는 그들은 차르의 심복인 세르게이 대공이 극장을 방문할 때를 기다려 마차에 폭탄을 던지기로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폭탄을 던지겠다고 장담하던 야네크(김주완)는 마차에 함께 탄 대공의 어린 조카들을 발견하고 차마 폭탄을 던지지 못한다.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다 가까스로 탈옥한 스테판(이승준)은 그런 야네크를 낭만주의자라고 격렬히 비난한다. 어린이 두 명의 목숨을 구하자고 수만 명의 러시아 어린이가 희생되는 것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명예를 더럽히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는 야네크와 진정한 인간해방을 위해선 인간까지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스테판은 격렬히 충돌한다.
결국 야네크는 2차 시도에서 마차 속에 혼자 있는 대공을 죽인다. 감옥에 간 야네크는 “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전쟁포로”라며 “당신들은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심판하지는 못 한다”고 온갖 회유에 끝까지 저항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던 도라(김지성·최은선)는 야네크의 처형 소식을 접하고는 폭탄테러 행동대원을 자원하고 나선다.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는 올해 이 연극은 한국인이라면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세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과거 한국의 독립투사들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정의의 실현을 위해선 어린이의 희생도 불가피하다는 스테판과 어떤 경우도 순수를 포기해선 안 된다는 야네크의 차이로만 단순화할 순 없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도라의 모습에서 악독한 고문에 비정한 투사가 된 스테판의 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와 레지스탕스의 차이를 놓고 고뇌한 카뮈의 실존적 숨결이 느껴진다. 3월 10일까지 서울 대학로 선돌극장. 1만5000∼2만5000원. 02-6012-2845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