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일본 도쿄(東京)와 오사카(大阪)를 방문했다. 본보가 올해 초부터 이달까지 연재한 ‘그린 이코노미 현장을 가다’ 시리즈 기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방문은 3년 만이었다.
취재를 하며 기자는 3년 전에 느낄 수 없었던 ‘에코(친환경)’ 신드롬에 깜짝 놀랐다. 길거리, 가전매장, TV, 백화점 등에서 도쿄는 온통 에코 열풍에 빠져 있었다.
지난해 12월 11일부터 4일 동안 도쿄의 대형 국제전시장인 ‘빅 사이트’에서는 ‘에코 프로덕트 2008’ 박람회가 열렸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내로라하는 일본 기업 750개사가 참여했고 일본인 17만여 명이 다녀갔다. 특히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이 많았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각 부스를 누비던 초등학생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에코 열풍은 쉽게 느낄 수 있다. 도쿄 거리에는 ‘에코 백’이라고 쓰인 장바구니가 보였고 ‘에코택시’라고 적힌 택시가 다녔다. TV에서는 뉴스뿐 아니라 오락이나 쇼 프로그램에서도 ‘에코’를 주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신칸센(新幹線) 열차에 설치된 문자광고판에 흐르는 기업 광고 역시 ‘에코’ 일색이었다. ‘고효율 엔진을 만들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입니다’, ‘고효율 전자제품으로 지구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에코의 물결은 오사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파나소닉 직원을 만나 명함을 받으니 ‘에코 아이디어’라는 녹색 글자가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환경 친화적인 기업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자의 호기심을 알아챈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최근까지 한국에선 ‘참살이(웰빙)’가 화두였다. 유기농 농산물뿐 아니라 의류, 장난감 등 각종 공산품에까지 참살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일본에선 참살이의 자리를 에코가 꿰차고 있었다.
일본뿐이 아니다. 선진국들은 지금 에코를 앞세워 ‘게임의 법칙’을 바꾸려 하고 있다. 자국산업의 에너지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 뒤 다른 나라에도 유사한 기준을 요구하려는 게 이들 국가의 전략이다.
유럽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동차, 항공기 등의 분야에서 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물품을 사 갈 때 온실가스 배출 정보를 요구하기도 한다. 에코가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작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바뀐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할 준비를 얼마나 착실히 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박형준 산업부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