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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컴퓨터가 통제하는 감옥, 파멸하는 죄수

입력 | 2009-02-27 02:58:00


연극 ‘아일랜드’ 4월 5일 까지

《그리 멀지 않은 미래. 무채색 반구 모양의 42호 감옥이 반으로 포개진다. 팬티만 걸친 남성 둘이 마주 서있다. 존과 윈스턴. 그들은 기약 없이 감옥에서 썩어야 하는 죄수다. 연극 ‘아일랜드’(연출 임철형)가 미래 버전으로 탈바꿈했다.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초연된 ‘아일랜드’는 남아공의 한 수용소에 갇힌 흑인 죄수 존과 윈스턴의 2인극이다.》

14일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아일랜드’는 시점만 바꾼 것이 아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천장에서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컴퓨터 ‘지니’에게 통제 당하고, 무의미하게 땅을 파던 육체 노역은 눈감은 채 가만히 서서 이뤄지는 ‘영상 노역’으로 대체됐다. 35년 전 초연됐던 연극 ‘아일랜드’를 본 적 없는 관객이라면 이 연극을 가상의 통제된 사회를 그린 영화 ‘아일랜드’의 연극 버전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그만큼 이 작품은 자유와 속박, 남은 자와 떠나는 자라는 주제를 지금, 이 시점에서 풀어가려는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인종차별, 독재정권 등 눈에 띄는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속박이란 무엇일까. 이 작품은 그 해답을 컴퓨터에 의해 조종되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찾았고 이는 인터넷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익명으로 부유하는 젊은 관객들에게 주효한 선택이었다.

1977년 윤호진 연출에 의해 한국에서 초연된 후 여러 번 무대에 올려졌던 연극 ‘아일랜드’는 묵직한 메시지만큼 배우들의 연기대결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승호 서인석 이호재 김갑수 씨 등이 거쳐 가며 연기파 배우의 산실이 된 것도 이 때문.

이번이 첫 연극 출연작인 뮤지컬 배우 조정석과 양준모 씨는 각각 영민한 정치범 존과 순진하면서 우직한 윈스턴 역을 맡아 패기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석 달 후 출소하는 존을 시기하며 점점 파괴적으로 변해가는 윈스턴의 연기가 돋보인다. 연극이 끝난 후에는 90분간 이어진 무대의 정적을 뒤집는 깜찍한 커튼콜이 준비돼 있다. 4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SM극장, 2만5000∼3만5000원. 02-764-8760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