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빵집엔 오전 2시면 불이 켜진다.
별이 떠 있는 밤길을 걸어 가게로 나온 제빵사는 밤새 숙성시킨 빵반죽을 분주히 구워내며 신선한 빵을 내놓을 채비를 한다.
오전 6시쯤이면 거리는 고소한 빵 굽는 냄새로 가득하다.
어느덧 도시가 완전히 밝아지면 빵집은 따끈따끈한 아침 빵을 사러 온 사람들의 활기로 들썩인다.
이런 정통 프랑스 빵의 묘미를 한국에도 알리고자 서울로 날아온 프랑스 사람들이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프렌치 베이커리 ‘기욤’의 기욤 디에프반스 사장과 티에르 보드 제빵장이다.》
○ 현지 설계자 불러 화덕 만들고 원료 공수
이들이 말하는 ‘진짜 프랑스 빵(Le pain v´eritable)’은 무엇일까.
“냉동 반죽을 구운 것은 프랑스 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빵의 발효를 인위적으로 돕는 이스트도 넣어선 안 되죠.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정통 프랑스 빵에는 오직 밀가루와 소금, 물만 들어갑니다. 밀가루와 물이 섞였을 때 생겨나는 효모로 자연 발효된 빵이 진짜 프랑스식 빵이에요.” (디에프반스 사장)
그는 프랑스 정부가 문화유산으로서의 정통 빵을 지키기 위해 만든 ‘프랑스 전통 빵(Pain de tradition fran¤aise)’이란 이름의 법에도 실제 이 같은 내용이 정의돼 있다고 했다.
보드 제빵장은 매일 오전 2시에 출근해 물과 소금, 밀가루를 넣어 빵 반죽을 빚는다. 반죽 덩어리는 5시간가량 지나면 적당히 발효가 된다.
이를 기다란 막대가 달린 나무판자 위에 올려 빵 전용 화덕(피자를 구워내는 화덕과는 다른 구조다) 안에 넣는다. 화덕은 장작 등을 때어 24시간 내내 뜨겁게 유지한다.
반죽은 뜨거운 열기의 화덕 안에서 30분가량 굽는다. 이렇게 하면 겉 부분의 크러스트는 두껍고 딱딱하지만 그 안의 질감은 더없이 촉촉하고 쫄깃한 특유의 프랑스 빵이 완성된다.
디에프반스 사장은 테제베(TGV) 고속철도로 유명한 프랑스 알스톰사 시스템 엔지니어로 KTX 건설을 위해 6년 전 한국에 왔다. 그는 ‘프랑스 빵이 아닌 빵이 프랑스 빵으로 잘못 알려지고 있는’ 현실에 놀라 직접 빵집을 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기욤 매장 안에는 에스키모 집처럼 생긴 대형 화덕이 있다. 화덕에서 빵을 구워내는 전통 프랑스 방식을 따르기 위해 현지에서 화덕 설계자를 불러다 특별히 만든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 38년간 제빵사로 활동한 보드 제빵장 역시 디에프반스 사장이 프랑스로 가 수십 명의 제빵장을 만나본 끝에 직접 스카우트해 온 인물이다.
기욤 관계자는 “빵에 쓰이는 모든 재료는 프랑스산 유기농 원료를 직접 공수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통 프랑스 빵은 바케트 아닌 ‘미시’
흔히들 프랑스 빵 하면 바게트를 떠올리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라는 게 디에프반스 사장의 설명이다. 프랑스에 바게트가 들어온 것은(바게트의 본고장은 오스트리아라고 한다) 고작 100년 전후의 일이라는 것.
“진짜 전통 프랑스 빵은 따로 있어요. ‘미시(Miche)’라고 불리는 것인데, 바게트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수백 년간 프랑스 사람들의 ‘밥’이 됐던 빵이죠.”
커다란 쟁반 모양의 미시는 역시나 물과 소금, 밀가루로만 만들어진다. 얼핏 밍밍한 맛일 듯했지만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해 자꾸만 먹게 되는, 묘한 중독성이 있는 빵이었다.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열풍’처럼 퍼진 브런치에 대해 보드 제빵장은 “프랑스 스타일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베이컨과 팬케이크 정도가 전부인 미국식 브런치와는 전혀 다른 브런치 요리가 있다는 것.
기욤에서 맛 볼 수 있는 정통 프랑스식 브런치 메뉴 중 대표적인 것은 ‘키셰(Quiches)’다. 계란을 풀고 그 안에 신선한 토마토, 호박, 가지, 버섯 등 각종 재료를 넣은 뒤 두께 5cm가량의 도톰한 피자조각 모양으로 만들어 스크램블드에그 정도의 느낌으로 익힌 것이다.
다가오는 봄에는 정통 프렌치 스타일의 ‘크레페(Cr^epes)’도 선보일 예정이다. 크레페는 본래 ‘샹들뢰르’(춥고 어두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하고 밝은 봄이 온 것을 기념하는 날)를 기념하기 위해 먹었던 음식으로, 크레페의 동그란 금빛 형태는 태양의 모양을 상징한다.
보드 제빵장은 “한국에 온 뒤 많은 ‘프랑스 빵’을 접해봤지만 대부분은 진짜 프랑스 빵과 전혀 다른 맛과 모양이었다”며 “앞으로 진정한 프랑스 빵의 맛과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 빵을 보면 문화가 보인다
한국 사람들이 ‘밥심’으로 산다면, 프랑스 사람들은 ‘빵심’으로 산다. 한 국민의 주식이 되는 음식에는 그 나라의 자연환경과 문화, 더 나아가서는 철학까지도 녹아있기 마련.
프랑스 빵의 면면을 통해 프랑스를 알아보자.
▽갈레트 데 루아(Galette des rois)=성경에서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 날로 기록되는 주현절(1월 6일)을 기념해 먹는 파이다. 파이 속에는 ‘페브(Feve)’라는 도자기 인형을 넣어 함께 굽는데, 이 인형이 들어있는 파이 조각을 먹는 사람은 이날 하루 동안 왕이 되는 놀이를 한다. 파이 안에는 부드럽고 진한 아몬드 크림이 들어 있어 달콤하다. 맛이 좋을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나눠 먹으며 재밌는 놀이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이 새해 모임을 즐길 때 가장 많이 먹는 빵이기도 하다.
▽크레페(Cr^epes)=국내에도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는 프랑스 빵이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대표 음식이다. 크레페는 켈트족이 샹들뢰르(춥고 어두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하고 밝은 봄이 찾아오는 걸 기념하는 날·2월 1일)를 즐기며 만들어 먹었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브르타뉴 외 다른 지방에서는 크레페가 샹들뢰르라고도 불린다. 크레페의 생김새는 동그란 금빛 형태로, 밝은 날 떠오른 태양을 상징한다. 프랑스인들이 봄을 맞을 때 먹는 빵이다.
▽피에스 몽테=‘쌓은 조각들’이란 뜻을 지녔다. 작은 프티슈(동그란 모양의 속이 빈 과자·일명 슈크림 볼)들을 쌓아올려 만들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피에스 몽테는 결혼식, 세례식, 회갑연, 친목모임 등 특별한 날에 만들어 나누어 먹는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 수 있지만 보통은 프티슈를 피라미드 형태로 층층이 쌓은 뒤 누가틴(캐러멜과 아몬드를 섞어 만든 시럽)을 뱅뱅 돌려가며 접착과 장식 효과를 준다. 제일 윗부분에는 신랑 신부의 모형장식 등을 올려 완성한다.
▽부셰(B^uches)=부셰는 프랑스어로 ‘장작’이란 뜻이다. 케이크 모양이 반으로 가른 나무 땔감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과거 프랑스 가정에서는 겨울철 화덕 안에 아주 큰 장작을 넣어 집 안을 데웠는데, 최상급의 장작은 12일 동안 꺼지지 않고 탈 정도의 크기였다고 한다. 부셰는 보통 크리스마스나 망년회 케이크로 많이 쓰인다. 버터크림을 이용하는 게 보통이지만 최근엔 아이스크림을 사용한 부셰도 인기다. 초콜릿, 바닐라, 딸기 등 다양한 맛의 부셰가 있다.
▽팽 베니(Pain B´enit)=팽 베니는 ‘신성한 빵’이란 뜻이다. 본래 장례식에서 쓰였다. 장례 미사를 돕던 복사들이 길고 납작한 브리오슈(버터가 많이 첨가된 식빵) 형태의 이 빵을 잘라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최근에는 장례식뿐 아니라 다른 미사에서도 신부의 축성이 끝난 후 이 빵을 나눠 먹는다.
도움말: 기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