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실용(實用)을 선택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잃어버린 10년’의 ‘열매 없는 이념’에 지쳤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5년의 ‘편 가르기’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데었기 때문이다.”(동아일보 2007년 12월 20일자 3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대선 다음 날짜에 필자가 썼던 ‘이명박 시대―압승 의미와 과제’ 해설의 첫 부분이다. 국민은 역대 대선 사상 최다 표차로 탄생된 이명박 정권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 정권 출범 1주년이 지난 오늘은 어떤가. 좌파정부의 이념 편향이 옅어지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열매’는 거두지 못했다. 많은 국민을 ‘네 편’으로 돌려버린 노무현 정권 식 ‘편 가르기’는 완화됐지만, 그렇다고 신명을 바쳐 이 정권을 밀고나가는 ‘내 편’도 찾아보기 어렵다. 포퓰리즘이 줄었다고는 하나 ‘원칙’이 바로 선 것도 아니다.
세계 경제위기가 덮친 마당에 ‘경제 살리기’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고 따질 생각은 없다. 문제는 열매를 따기는커녕 과수원 근처에도 못 간 데 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와 개혁을 상징하는 금산분리완화법안과 미디어 관계법안 등 10여 건의 주요 ‘쟁점법안’은 시끄럽기만 했지, 단 한 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야당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171석이라는 근래 보기 드문 ‘안정 과반수’를 확보한 여당이 댈 핑계는 아니다. 여당이 과반수를 턱걸이했거나 여소야대였던 17대 국회 때 노무현 정권은 신행정도시법안과 사립학교법안, 각종 부동산대책법안 등 29건의 ‘쟁점법안’을 직권상정해 통과시켰다.
이처럼 정권의 과일 바구니가 빈 것은 진정한 ‘내 편’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비즈니스 프렌들리’하니까 여권 인사들은 ‘퍼블릭 비즈니스’가 아닌, ‘프라이빗 비즈니스’에만 몰두하고 있다.
청와대 인사와 여당 의원들, 여당 내의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 친이계 내부에서도 이상득계와 이재오계, 당 지도부의 박희태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 심지어 한나라당 출신의 김형오 국회의장까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을 향해 ‘약진 앞으로’ 해왔다. 이러니 쟁점법안 처리는 물론 각종 정치 어젠다에서도 여권이 혼연일체가 돼서 뭉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런 정권은 없었다.
무엇보다 최악은 법질서를 어겨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다는 인식이 번진 것이다. 시위대가 도로를 불법 점거하는 순간 신체적인 자유에 위해(危害)가 가해진다는 법질서 의식이 없는 나라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한국에선 불법을 일삼던 시위대가 미국에 원정시위를 가선 순한 양처럼 폴리스 라인을 지킨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한국의 얼굴인 광화문 사거리에 컨테이너로 ‘명박산성’을 쌓을 때부터 촛불시위대는 꿰뚫어보았다. 쇠 컨테이너 너머 이 정권의 무르디무른 속살을.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경제를 살리는 것도 좋다. 하지만 많은 국민이 지도자에게 바라는 것은 그 이상이다. 촛불이 서울 도심을 뒤덮어도 청와대 뒷산에서 감상에 젖기보다는, 신념을 향해 고독하게 나아가는 그런 모습 말이다. 그 신념이란 두말할 나위 없이 법질서와 원칙의 회복, 나아가 국격(國格)의 회복이 돼야 할 것이다.
현행 대통령제 아래서 정권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길게 잡아야 3년이다. 지나간 1년처럼 호락호락하다간 자칫 칼을 빼보지도 못하고 레임덕부터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이명박 정권 사람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제균 영상뉴스 팀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