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은 공연계마저 위축시키고 있다.
TV의 ‘막장 드라마’ 논란이 한창이듯, 공연도 예외는 아니다.
일단 터트리고 보자는 식으로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작품을 선보여 관객들의 원성을 사는 건 예삿일이고, 몇 해 째 같은 작품을 질적으로 향상시키지 않고 인기 연예인만 끼어 넣어 우려먹는다.
신작이라고는 영화 콘텐츠를 재가공하는 무비컬(무비+뮤지컬), 티켓 값이 십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보는 사람만 보는’ 해외 라이선스 공연이 대부분이다.
스포츠동아 ‘무대, 희망을 말하다’ 릴레이 인터뷰는 불황 속에서도 공연에 전념하는 스태프들을 찾아 대안을 듣는다.
이번 주는 ‘친환경’, ‘착한 공연’을 꿈꾸는 공연쟁이들이다.
돈 없이 이룰 수 없는 나의 꿈 ‘무대’ 돈 만들러 기획서 들고 무조건 뛰었다 배짱 투혼! 열정의 한판승이었다 - 이재국
○ 나는 채소! 유기농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테다.
이재국(35) 작가는 바야흐로 유기농 사나이다. 무공해 공연, 무농약 사랑 등 편견 없고 조건 없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은 남자다.
지난 해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사진)’를 좋은 반응을 얻은 뒤, 올해 다시 3월 20일부터 12월 31일, 2009년 마지막 밤까지 쉬지 않고 공연을 올린다.
이 뮤지컬의 특이한 점은, 각종 농업단체, 유기농 기업의 후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시작도 독특했다. 우연히 야채 가게를 지나다, 점원들의 열정에 놀란 그는 그들의 모습을 공연에 담으려고 ‘총각네 야채가게’의 대표를 찾아가 설득한다. 점원들의 ‘싸요 싸요’, ‘골라 골라’가 모두 뮤지컬 노래처럼 들렸기에 가능한 아이디어였다.
물론 맨땅에 헤딩하듯, 공연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라디오방송 작가출신의 그는 무작정 기획 아이디어의 포트폴리오를 짜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어느 회사에 유기농 신제품이 나왔다고 하면 찾아가고, 남양주에서 세계유기농대회가 한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으면 또 찾아간다. 그렇게 경기 농림진흥재단, 남양주시, 경기도 농정국 등 각종 농림 단체, 공무원 조직을 설득했다. 배우들이 각종 행사에 갈라쇼도 참여하고, 광고협찬도 받으면서 이런 저런 수익이 될 만한 일을 창출한 것이다. 그렇게 작년 제작비 4억 원의 공연을 성공시켰고, 올해는 7억 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제가 이것저곳 도리어 찾아가면 그들이 깜짝 놀라죠. 이런 (유기농) 대회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았냐? 혹시 이걸 노리고 작품을 만든 게 아니냐?”
대학로에 없는 시스템이라 힘든 점도 많았지만 그는 이게 궁극적으로 공연을 위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공연, 마치 KS마크와 G마크처럼 공연에도 가족용 품질 표시를 넣고 싶었던 것이다.
뮤지컬 안에서만 야채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 그의 꿈도 풋풋한 야채 향을 풍긴다. 얼마 전 아빠가 되어 친한 연예인과 육아일기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대학로에 새로이 마련한 ‘유기농 전용 극장’에서 낮에는 어린이용 유기농 뮤지컬, 밤에는 온 가족을 위한 유기농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를 계속할 작정이다. 어린이 유기농 뮤지컬은 영국의 학교 급식을 모조리 친환경으로 바꾼 ‘제이미 올리버’ 요리 운동가의 얘기에 감명 받고 쓴 작품이다.
그는 “언젠가 기필코 유기농 연극제, 유기농 뮤지컬제 등 유기농공연만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무대, 희망을 말하다 릴레이 인터뷰]별난 공연쟁이② 심바루